요즈음 우리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수많은 기억과 판단을 디지털 환경에 의존하고 있으며 디지털기기 사용에 많은 시간을 투입하고 있다. 미국의 인지신경학자이며 아동발달학자인 메리언 울프는 디지털에 의해 양육되고 있는 우리 아이들은 디지털기기에 의한 동시다발적인 자극과 순간 접속에 매일 노출되어서 내면화된 지식을 축적하지 못하게 되고, 편향적인 사고가 심해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저널리스트인 프랭클링 포어는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MS, 애플과 같은 거대 테크 기업들이 우리의 일상을 점점 더 편리하게 만들어주고 있지만, 그 편리함을 무기로 우리의 읽을거리와 읽는 방식을 바꿈으로서 우리의 ‘사색 가능성’을 파괴하였고, 결국 우리는 ‘생각을 빼앗긴 세계’에 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이들은 종이책을 통한 글 읽기에 몰입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한다. 깊이 있는 책읽기를 통해 주의, 기억, 연결, 추론, 분석을 거치면서 타인에 대한 공감력을 키우게 되면,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많이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과 가치관의 대립을 줄일 수 있고, 얕은 정보를 다량으로 배출하는 디지털 편향성에서 벗어나 균형적인 사고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의 모든 일상적인 공간 뿐 아니라, 도서관을 찾아가도 많은 디지털기기로 채워진 공간에 있게 된다. 또한 다양한 교양교육 프로그램과 메이커스페이스와 같은 새로운 도서관서비스의 제공은 우리 주변에 산재하고 있는 또 하나의 교육문화센터로 도서관을 내몰고 있다. 그렇지만, 2018년부터 도서관에 대한 대립적 관점에 대한 연구를 해오면서, 이러한 현상은 사실 이용자들의 내면적 요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여러 다양한 부류의 도서관 이용자들과의 대화에서도, 디지털 기기가 점유하고 있는 첨단 이미지의 도서관보다는, 그리고 단순히 이용률이 높은 도서관보다는, 나만의 조용한 시간을 통해 책읽기와 학습에 집중할 수 있는 도서관에 대한 깊은 요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도서관이 오랫동안 제공해왔던 ‘책읽기’라는 본질적인 가치가, 편리함과 효율성을 강조하며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오히려 더 강조되어야 할 가치임을 알려 준 것이며, 보다 책읽기에 편안한 도서관 공간을 우선적인 이용자 경험 가치로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모두에게 도서관 공간은 책에 대한 기억과 추억의 공간이었다. 우리 도서관은 분주하고 어지러운 디지털의 파도에 둘러싸여 있지만, 누구나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리조트와 같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곳이었으면 정말 좋겠다.
도서관 이용자와 도서관 전문가 간의 도서관 이미지의 차이에 대한 연구 논문을 소개합니다. 일본의 연구자가 작성한 이 논문은 PAC (Personal Attitude Construction) 분석을 활용하여 연구한 것으로 설문조사에 의한 인식의 차이 연구와는 다른 방법론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초록: 사람들은 다양한 도서관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전의 연구들은 도서관 이용자들과 도서관 및 정보과학의 전문가들이 소유한 도서관의 이미지들의 차이들에 초점을 맞추지...
헬싱키 중앙도서관 오디(Helsingin keskustakirjasto Oodi)에는 10년이 넘는 구상 과정 동안 수많은 기대가 쌓였다. 그 기대 가운데 상당수는 개관 3개월 만에 이미 충족한 듯 보인다. 다만 진짜 영향은 이용 방식이 자리를 잡고 몇 해가 지난 뒤에야 드러날 것이다. 그럼에도 오디를 둘러싸고 형성된 열기는, 이 중앙도서관이 도서관 제도는 물론 건축과 더 넓게는 문화 전반의 변화까지 이끌 수 있음을 벌써 암시한다.
중앙도서관 오디가 문을 열자 많은 사람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수십 년 동안 여러 방향으로 구상되다가 끝내 뚜렷한 전체 비전 없이 조성된 퇴울뢴라흐티(Töölönlahti) 일대는, 지난해 말 개관한 중앙도서관이 마지막 빈 터를 채우면서 적어도 현재로서는 비로소 완성된 듯 보인다. 이보다 더 중심적인 입지는 헬싱키는 물론 상징적으로는 핀란드 전체에서도 찾기 어렵다. 실제로 설계공모 지침에서도 “상징적으로 중요한 다른 건물들 사이에 놓일 상징 건축”을 요구했다.
2013년에 진행된 중앙도서관 설계를 위한 2단계 국제건축공모에서는 알라 건축사무소(ALA-arkkitehtitoimisto)의 안 “번역(Käännös)”이 당선됐다. 총 544개 안이 출품된 이 공모의 심사평은 “번역”이 주변 환경과 단단하게 연결된 점을 높이 평가했다. 외관에서 가장 강한 인상은 물결치듯 돌출된 목재 표면이다. 그 아래 지상층에는 아치형 공공공간이 생기며, 이는 건물 앞 시민광장인 칸살라이스토리(Kansalaistori)의 연장처럼 이어진다. 이 목재 물결은 그 위로 들어 올려진 자료 구역 “책의 하늘(Kirjataivas)”과 국회의사당 방향을 향한 테라스의 받침대 구실을 한다.
알라의 건축 파트너인 유호 그뢴홀름, 안티 누스요키, 사물리 울스턴은 외부 건축을 무엇보다 맥락에 대한 반응으로 본다. 도서관 부지는 길고 제약이 큰 직사각형인데, 건축은 이 틀을 흔들어 놓으려 했다. 누스요키는 기본 해법을 이렇게 설명한다. “형태는 주어진 상자에서 벗어나 다른 것이 된다. 바깥 공간과 건물을 엮고, 그 공간을 적극적으로 점유하는 긴장감 있는 구조가 된다.”
그뢴홀름은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는 노르웨이 크리스티안산(Kristiansand)의 킬덴 콘서트홀(Kilden-konserttitalo)에서도 비슷한 형태를 쓴 적이 있다. 그곳에서도 형태는 펄럭이는 깃발 조각이 아니라, 항만 지역의 공간을 장악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얇은 목재 부재 6겹으로 만든 외피는 방화와 장기 내구성 면에서 과제를 던졌다. 누스요키는 이렇게 말한다. “핀란드에서는 이처럼 큰 목재 외벽을 이전에 만든 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도 목재는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재료다.”
목재는 장소에 부드러움과 따뜻한 분위기를 더하도록 의도됐다. “사람들은 종종 오디가 누구를 위한 곳이냐고 묻는다. 오디는 이 근처를 지나는 모두를 위한 곳이다. 건축은 사람을 안으로 이끌고, 자연스럽게 흘러들게 하며, 안의 기능을 바깥에도 드러낸다.”
“맞혀보라. 핀란드인들이 101주년 독립을 기념하려고 무엇을 했을까? 그렇다. … 다리를 하나 지었다.” 1
설계공모 단계부터 새 중앙도서관의 기능 요구는 서가 높이에 이를 정도로 세밀하게 정리돼 있었다. 알라의 개념은 다양한 공간 배치안을 검토하고 압축한 결과였다. 건축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안의 압도적인 강점은 개방형, 폐쇄형, 개방형 층의 조합을 명료하게 응축한 데 있었다. 그 결과 최대 규모이면서도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닌 세 개 층을 만들 수 있었다.”
물결치는 목재 표면은 내부 기능 개념과도 직접 연결된다. 기능은 말하자면 이 표면을 중심으로 조직됐다. 구조와 기능의 3분법은 하나로 맞물린다.
광장의 연장처럼 작동하는 개방형 지상층 내부를 만들기 위해서는 건물 전체 길이에 걸친 강철 다리 구조가 필요했다. 지상층의 천장은 이 다리 구조를 덮는 물결 모양 목재 면으로 마감했다.
목재 표면 위 중간층에는 메이커스페이스(makerspace) 작업실, 음악 스튜디오, 직원 공간이 들어선다. 이 층은 구조적으로도 기술 장치가 집중된 기계적 중간 요소처럼 작동한다. 다리 구조가 이 층을 관통하고, 환기 설비를 비롯한 설비 시스템도 여기에 집중돼 있다.
3층은 실제 자료 구역이다. 기술 설비를 아래층에 모아 두었기에 이 층은 시각적으로 더 가볍고 더 넓게 만들 수 있었다. 높은 곳에 조용히 떠 있는 밝은 공간이 된 것이다. 천장은 목구조라 기둥 수를 줄일 수 있었다. 물결치는 천장을 부드럽게 관통하는 채광구가 들어가고, 외벽 전체는 유리로 마감했다. 외측 유리는 유리 기둥이 받친다.
오디의 목표 수명은 150년이다. 가변성은 건축 유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이뤄진다. 사물리 울스턴은 이렇게 말한다. “건축에서는 흔히 비슷비슷하고 바꾸기 쉬운 일반적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아주 특별한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후자에 더 가깝다. 하지만 미래의 도서관이 어떤 모습이든, 그 도서관은 이런 유형들 가운데 어디엔가 자리를 찾게 될 것이라 믿는다.”
사진: 투오마스 우우셰이모(Tuomas Uusheimo)
“새 중앙도서관은 도시 전략 프로그램이 제시한 목표를 지원한다. 이 도서관은 학습, 역량, 교양, 문화를 복지와 경쟁력의 기반으로 강화한다.” 2
개관 이후 오디는 특히 새로운 기능성 때문에 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도서관은 공공공간의 역할을 전면에 내세우며,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분명히 선언한다. 이런 목표는 이미 공모 지침에 담겨 있었고, 그 배경에는 2008년에 작성된 조사 보고서 대도시의 심장, 헬싱키의 심장(The Heart of the Metropolis – the Heart of Helsinki)이 있다. 이 보고서는 국제적인 도서관 흐름을 검토하며 중앙도서관 프로젝트의 밑그림을 만들었다.
건축공모 결과가 나온 뒤와 실시설계 시기에 헬싱키 시립도서관을 이끌었던 투울라 하비스토(Tuula Haavisto)는 오디의 뿌리가 더 오래전으로 올라간다고 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헬싱키 도서관 제도는 이미 훨씬 이전부터 다양한 운영 모델을 실험해 왔고, 오래전부터 국제 흐름과 긴밀히 연결돼 있었다.”
헬싱키 도심 여러 곳에서 운영되다가 오디 개관과 함께 문을 닫은 키르야스토 10(Kirjasto 10)은 1994년에 이미 설립됐다. 처음에는 당시 새로운 흐름이던 인터넷의 도서관 활용에 집중했다. 이후 키르야스토 10에는 메이커스페이스 작업실의 초기 형태도 들어섰다. 이 기능은 나중에 다른 도서관들로 퍼졌고, 지금은 오디 2층에서 분명한 존재감을 보인다.
건축이론 선임대학강사인 안니 바르톨라(Anni Vartola)는 지난해 여름 베네치아 건축비엔날레 핀란드관에서 열린 마인드-빌딩(Mind-Building) 전시의 내용을 선별하면서 핀란드 도서관 역사를 깊이 살폈다. 바르톨라도 오디의 뿌리를 최소 30년 전으로 본다. 도서관을 거실로 부르기 시작한 시점이 이미 1980년대였기 때문이다.
바르톨라는 이렇게 정리한다. “언론은 오디를 혁명, 새 시대의 시작처럼 다뤘다. 하지만 나는 오디를 긴 발전 과정의 한 단계로 본다. 오디는 단절이라기보다 연속이다.”
1980년대에 도서관을 거실로 보던 생각은 복합시설 건립과도 이어졌다. 바르톨라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때부터 도서관은 점차 사람을 만나게 하는 장소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작은 지방도시에도 그런 장소를 만들고 싶어 했다. 도서관의 역할은 지역문화를 지키고 지역 이미지를 높이는 것이었다.” 도서관 사용 방식은 이미 오래전부터 변해 왔다. 1990년대에는 취미용 장비를 빌려주는 일도 시작됐다.
이런 발전을 고려하면, 바르톨라는 오디가 오히려 도서관의 본질을 두고 논쟁을 불러일으킨 점을 조금 뜻밖으로 본다. “40세가 넘은 우리 세대, 즉 권력을 갖고 목소리를 내는 세대는 도서관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소 향수적이고 보수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도서관 제도는 계속 진화했지만 도서관 건축은 더 느리게 바뀌었다. 우리는 더 일찍, 더 과감한 건축을 시도할 수도 있었다.” 다만 유형적으로 볼 때 오디의 새로움은 공간 배분에 있다. 이제 만남을 위한 층이 하나, 작업실을 위한 층이 하나, 그리고 전체 공간의 3분의 1만이 실제 자료 공간이다.
오디와 같은 시기에 새 도서관법도 함께 준비됐다. 이 법은 2017년에 시행됐다. 새 법은 도서관의 사회적 임무를 이전보다 넓게 규정한다. 장서 유지와 정보 제공뿐 아니라, 공공도서관은 사회적 대화와 능동적 시민성,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촉진해야 한다. 더 구체적으로는 “학습, 취미, 작업, 시민활동을 위한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이 법은 오디와는 별개로 준비됐지만, 둘 모두의 배경에는 같은 국제 흐름과 도서관계의 핵심 이념이 놓여 있었다. 오디는 이 법이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처럼 보인다. 전 도서관서비스 책임자 투울라 하비스토는 이렇게 말한다. “오디에서는 도서관법 조항이 말 그대로 콘크리트에 부어졌다.”
사진: 투오마스 우우셰이모(Tuomas Uusheimo)
“공간은 가능한 한 개방적이고 범용적으로 설계한다. 그래서 쉽게 바꿀 수 있고, 이동식 가구와 벽체, 가벼운 구조물로 ‘공간 속 공간’을 계획할 수 있다.” 3
오디의 세 층은 건축과 분위기 면에서 모두 매우 다르다. 반면 그 안에 들어간 요소들, 즉 이동식 가구와 일부 마감재는 실용적 이유 때문에 더 일반적인 성격을 띤다. 알라의 사물리 울스턴은 설계 원칙을 이렇게 설명한다. “크고 오래 남는 것은 맞춤형이고 특별하다. 그만큼 비용도 든다. 그래서 바뀌는 요소들은 시장에서 구할 수 있고, 쉽게 교체할 수 있으며, 다양한 제품군 가운데서 선택 가능한 것으로 가져가려 했다.”
유호 그뢴홀름은 이렇게 말한다. “어느 정도의 일반성은 건축의 자연스러운 일부다. 거기서 대비가 생기고 분위기의 폭도 넓어진다. 예를 들어 도서관 안의 유리벽 회의 부스는 도서관만의 고유한 장치는 아니다. 하지만 도서관에 흥미로운 층위를 더한다.”
알라의 참조 대상은 국제적이다. 건축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물론 참조가 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세계 건축의 흐름 속에서 작업하는 것이 중요했다. 오디는 목표와 위상 면에서 매우 국제적인 건물이기 때문이다.” 특히 오디의 기능적 선례로는 시애틀 중앙도서관(Seattle Central Library, OMA, 2004)과 센다이 미디어테크(Sendai Mediatheque, 도요 이토(Toyo Ito), 2001)를 들 수 있다.
“우리는 설계 단계에서 센다이를 방문했다. 그곳에서도 오디처럼 건물의 지속적 성격은 구조에서 나온다. 층들은 작은 개구부로 연결되고, 바뀌는 사용은 그 영속 구조 위에서 작동한다.”
오디에 도입된 하나의 개별 요소로는 층 사이의 에스컬레이터를 들 수 있다. 이 장치는 국제 건축 담론과 공간의 범용성, 그리고 공공공간의 성격을 함께 환기한다. 렘 콜하스(Rem Koolhaas)는 2014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으며 에스컬레이터를 창문, 문, 엘리베이터 같은 건축의 기본 요소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콜하스가 설계한 시애틀 중앙도서관에도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누스요키는 이렇게 비교한다. “이 배경에는 국제 담론에 참여하려는 의도도 있고, 오디라는 건물의 성격도 있다. 우리는 세 층의 사용 비중이 균형을 이루길 원했다. 예를 들어 쇼핑몰에서는 3층에 갈 때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다. 결국 문제는 건축을 통해 기능을 어떻게 유도하느냐다.”
“건물은 주변 환경과 단단하게 연결되면서도 분명하게 존재를 드러내고, 중요한 공공건축으로서 자기 자리를 차지한다. 이 건물은 사람을 끌어들이고, 쉽게 다가갈 수 있으며, 쉽게 받아들여진다.” 4
퇴울뢴라흐티의 다른 건물들과 달리 오디는 신문 독자 의견란에서조차 느긋하고 땅에 발이 닿아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것은 설계자들이 처음부터 목표로 삼은 바였다.
유호 그뢴홀름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오디를 기념비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오디는 우선 사용을 위한 건물이다. 공모 지침에도, 또 전체 과정에도 도서관과 그 이용을 둘러싼 어떤 장중함이 분명히 있었다.” 안티 누스요키도 덧붙인다. “오디에는 일상성과 장중함이 서로 마주 놓여 있다.”
건축가들은 외부와 내부의 연결, 그리고 칸살라이스토리 광장이 다음 여름부터 더 활발히 쓰이기 시작하면 지금의 기념비적 인상도 옅어질 것이라 본다. “현재 지상층은 장기적으로 보일 모습보다 더 기념비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이 공간은 단순한 빈 로비가 아니라 지붕 있는 광장으로서 역할을 점점 키워 갈 것이다.”
현재 헬싱키 문화국장을 맡고 있는 투울라 하비스토는 이런 장중함을 긍정적으로 본다. 오디의 건축에 투자한 것은 곧 도서관 이용자를 존중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비스토는 이렇게 말한다. “예를 들어 덴마크 도서관은 더 휘게(hygge)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핀란드 도서관은 이른바 진짜 건축에 더 가깝다. 나는 이 핀란드식 노선을 좋아한다. 그 안에는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일종의 민중의 궁전이다. 핀란드는 시청 같은 건물에만 힘을 쏟지 않고, 보통 사람들을 위해서도 진짜 건축을 만든다.”
하비스토는 오디 개관식에도 참여했다. “사람들이 3층에 올라왔을 때 눈물을 보인 이들이 많았다. 오디는 방문객에게 엄청난 반응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이것이 자신들을 위해 지어졌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사진: 투오마스 우우셰이모(Tuomas Uusheimo)
“새 중앙도서관은 단순한 도서관을 넘어설 것이다. 그것은 실내에서 작동하는 공공공간이라는, 가능성으로 가득한 새로운 개념에 형태를 부여한다. 그런 점에서 이 건물은 핀란드 사회와 문화의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주는 징표다.” 5
오디는 도서관 제도의 기함이자 핀란드 사회, 문화, 교양의 상징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 실제 의미는 훨씬 시간이 지난 뒤에야 분명해질 것이다. 지금은 오디가 오늘의 헬싱키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지 살피는 편이 더 쉽다.
건축가들은 오디를 헬싱키 현대건축의 흐름 속에 놓고 본다. 안티 누스요키는 이렇게 말한다. “공공 사우나 뢰일뤼(Löyly)는 헬싱키 건축을 인스타그램 현상으로 만들기 시작했고, 건축이 일반 대중에게도 흥미로운 주제임을 보여줬다. 아모스 렉스(Amos Rex)도 같은 흐름의 일부다. 이런 프로젝트들은 일정한 수준의 공통된 야심을 공유한다. 우리는 서로의 작업을 베끼지 않지만, 서로를 주의 깊게 본다. 이런 나란한 자극은 건축가 모두와 시민 모두에게 이롭다.”
안니 바르톨라는 현재의 헬싱키 건축 담론에서 국제 논의의 흔적을 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헬싱키는 도심에 주목받는 건축 작품을 들여오는 문제를, 특히 공공건축의 영역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는 비슷한 논의가 이미 10년쯤 전에 진행됐다. “강한 형태를 내세운 건축, 특히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작업을 앞세운 흐름은 그 무렵 한 차례 타격을 받았다. 상징적 형태 언어가 너무 넘쳐나며 모두가 경쟁하듯 소리치는 느낌이 들자 피로감이 생긴 것이다. 헬싱키 거리에서는 아직 그런 피로가 크지 않고, 강한 제스처가 들어설 여지도 있었다.”
바르톨라는 오디를 상징적 건축의 좋은 예로 본다. “핀란드에서는 최근 수십 년 동안 형태 언어에 상징 가치를 전면적으로 싣고, 예산에서도 그것을 고려한 건물이 많지 않았다. 핀란디아 홀(Finlandia-talo)이 마지막 사례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그는 이 열광에 위험도 있다고 본다. “새 건물을 둘러싼 과도한 기대는 시야를 흐릴 수 있다. 일상이 시작된 뒤에는 스스로를 축하하는 데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바르톨라는 이렇게도 말한다. “오디와 베네치아 비엔날레 마인드-빌딩 전시를 통해, 핀란드 도서관이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오디를 다룬 최고의 기사들은 새 건물 하나만 치켜세우지 않고, 핀란드 도서관의 발전이라는 더 넓은 맥락 속에서 오디를 설명했다. 우리도 그 맥락을 스스로 이해하면 좋겠다.”
오디는 바르톨라에게 공공공간의 발전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지난 10년 동안 공공공간에 대한 우리의 언어가 바뀌었다. 오디는 이 변화에 입장을 내놓는다. 나는 우리가 실내를 공공공간의 연장으로 논의하는 단계로 나아가길 바란다.”
더 큰 주제는 핀란드성이다. 바르톨라는 이렇게 제안한다. “오디를 계기로 핀란드다움과 정체성 문제를 논의하는 일은 건강한 시도일 수 있다.” 그는 핀란드가 실제로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잘하는지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이 우리를 다른 나라와 구별하는가.
“물론 우리는 핀란드 건축을 국제 무대로 밀어 올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국제적이다. 나는 오히려 독창성에 대해 말하고 싶다. 핀란드에서 활동하는 건축가들은 핀란드의 정신 풍경, 자연, 사회, 역사에서 무엇을 끌어낼 수 있을까.”
특히 도서관이라는 건물 유형은 문화적 지향과 직접 맞닿아 있다. 그리고 그 문제는 결국 건축을 넘어선다. 바르톨라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지금 훌륭한 도서관 건물을 갖게 됐다. 그와 함께 사람들이 무엇을 읽는지, 무엇에 관심을 두는지, 어떤 언어를 쓰는지도 말해야 한다. 이것은 문화정책의 차원이며, 건축에서도 훨씬 더 많이 논의돼야 한다.”
어쨌든 건축의 문화적 역할은 변하고 있다. 알라의 건축 파트너들은 새 중앙도서관을 국가적 건설 서사의 방향 전환을 보여주는 한 장면으로 본다. 안티 누스요키는 시대마다 건축에 부여된 국가적 가치를 비교하며 이렇게 말한다. “예를 들어 전후 핀란드 건축에는 재건과 표준화라는 사명이 연결돼 있었다. 당시에는 개별 주택을 지으면서도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지금은 사고방식이 달라졌다. 오디는 어떤 것의 원형이 아니다. 오디의 역할은 하나의 사례가 되어 다른 건물들을 자극하는 데 있다.”
조니 터커(Johnny Tucker), “구름 위의 도서관: 알라 아키텍츠의 오디(Library in the clouds: Oodi by ALA Architects)”, 블루프린트(Blueprint), 2019년 362호, 64쪽. 번역은 편집부가 옮김.
헬싱키시(Helsingin kaupunki), 대도시의 심장 – 헬싱키 중앙도서관 건축공모 2012–2013(Metropolin sykkivä sydän – Helsingin keskustakirjaston arkkitehtuurikilpailu 2012–2013. Kilpailuohjelma), 23쪽.
같은 책, 49쪽.
헬싱키시(Helsingin kaupunki), 대도시의 심장: 헬싱키 중앙도서관 공개 국제건축공모 심사평(Metropolin sykkivä sydän: Helsingin keskustakirjaston avoin kansainvälinen arkkitehtuurikilpailu. Arvostelupöytäkirja 29.4.2013), 2단계 작품별 심사, 94쪽.
아르크인포 핀란드(Archinfo Finland), 마인드-빌딩. 핀란드관 전시. 베네치아 비엔날레 2018(Mind-Building. Exhibition in the pavilion of Finland. La Biennale di Venezia 26 May – 25 Nov 2018), 전시 카탈로그, 229쪽. 번역은 편집부가 옮김.
게재: 2019년 1호, 도시(Kaupunki)
1. 개요
이 글은 헬싱키 중앙도서관 오디를 단순한 신축 건물이 아니라, 도서관 제도와 공공공간 개념의 변화를 압축한 사례로 다룬다. 핵심 수치는 분명하다. 오디는 2013년 2단계 국제공모에서 544개 출품안 가운데 당선작을 냈고, 2018년에 준공됐으며, 연면적은 17,250제곱미터다. 목표 수명은 150년이다.
건물은 3개 층의 성격을 강하게 나눴다. 지상층은 광장의 연장인 공공공간, 중간층은 메이커스페이스와 스튜디오, 3층은 자료 공간이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전체 공간 중 실제 자료 구역은 약 3분의 1뿐이다. 이는 책 보관 중심 모델에서 활동·제작·체류 중심 모델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이 변화는 갑작스러운 혁신이 아니다. 기사 속 설명대로 키르야스토 10은 1994년에 이미 설립됐고, 도서관을 ‘거실’로 보는 시각도 1980년대부터 존재했다. 즉 오디는 단절이 아니라 30년 이상 축적된 흐름의 가시화다.
관련 자료도 이 해석을 뒷받침한다. 도서관디자인연구소는 오디의 기획과 건설에 10년이 걸렸다고 정리했고, 또 다른 글에서는 정책과 시민 참여의 축적이 약 20년에 걸쳐 이어졌다고 설명한다.
2. 추진 배경
오디가 추진된 배경에는 공간 문제와 제도 문제가 함께 있었다. 기사에 따르면 퇴울뢴라흐티 일대는 오랫동안 여러 방향으로 개발됐지만 전체 비전이 약했다. 오디는 이 지역의 마지막 빈 터를 채우며 도시 중심의 상징축을 정리해야 했다.
도서관의 사회적 역할도 기존 정의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2017년 새 도서관법은 장서 제공을 넘어서 민주주의, 능동적 시민성, 표현의 자유, 학습, 취미, 작업, 시민활동을 지원하는 공간 제공까지 공공도서관의 임무에 넣었다.
이용 행태도 이미 변하고 있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1990년대에는 취미 장비 대출이 시작됐고, 관련 기사에서는 방문자의 약 절반이 대출·반납 이외의 활동을 한다고 설명한다. 이는 ‘책을 빌리는 곳’만으로는 현대 이용 행태를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대규모 이용과 공공성 관리도 과제였다. 관련 기사에 따르면 오디는 연간 약 250만 명이 방문하고, 헬싱키 도서관망은 38개 도서관과 2대의 도서관 밴으로 구성된다. 이용 밀도가 높은 공공공간은 개방성과 질서, 환대와 안전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3. 개선 사항
첫째, 오디는 기능을 수직으로 분리해 충돌을 줄였다. 열린 지상층, 제작과 실험의 중간층, 조용한 자료층을 나누면서도 하나의 건축 개념으로 묶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구조와 기능의 3분법이 하나로 결합돼, 사용 목적이 다른 집단이 같은 건물 안에서 공존할 수 있게 했다.
둘째, 오디는 공공공간을 실내로 끌어들였다. 지상층을 단순 로비가 아니라 광장의 연장으로 설계했고, 건물 전체 길이를 가로지르는 강철 구조를 적용했다. 이 해법은 실내를 ‘지붕 있는 시민광장’으로 바꿨다.
셋째, 오디는 범용성과 특수성을 분리해 운영 유연성을 높였다. 기사에 따르면 오래 남는 큰 구조는 맞춤형으로 만들고, 바뀌는 가구와 일부 요소는 쉽게 교체 가능한 일반 제품으로 채웠다. 이는 150년 목표 수명과 운영 변화 대응을 함께 노린 전략이다.
넷째, 오디는 법과 공간을 연결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도서관법 조항이 콘크리트에 부어졌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2017년 법이 요구한 학습·취미·작업·시민활동 공간이 실제 공간 구성으로 구현됐다.
다섯째, 시민 요구를 설계 전 단계부터 반영했다. 관련 기사들은 시민에게 원하는 도서관 기능을 묻는 과정이 10년 또는 20년에 걸쳐 이어졌다고 전한다. 공간 혁신이 건축가의 조형 실험만이 아니라 정책, 이용자 조사, 운영 철학의 누적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4. 시사점
오디의 핵심은 ‘큰 건물’이 아니라 ‘도서관 정의의 재설계’다. 자료 공간을 약 33.3퍼센트로 줄이고 나머지를 체류, 제작, 만남, 작업에 배분한 결정은 도서관이 저장시설에서 사회 기반시설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오디는 혁명보다 연속에 가깝다. 이 점은 한국 공공도서관에도 중요하다. 새 건물 하나를 상징 사업으로 밀기보다, 1980년대의 거실 개념, 1994년 키르야스토 10, 2017년 도서관법 같은 장기 흐름을 함께 읽어야 공간 혁신이 일회성 유행으로 끝나지 않는다.
또 하나의 시사점은 상징성과 일상성의 결합이다. 오디는 국회의사당 맞은편이라는 상징 입지에 놓였지만, 설계자는 이를 기념비보다 사용 건물로 보았다. 그 결과 공공건축이 위엄만 드러내지 않고, 평범한 시민의 체류와 감정까지 존중하는 방식이 가능해졌다.
마지막으로, 관련 기사에서 확인되듯 오디는 다른 도시 도서관 리노베이션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이는 한 건물이 복제 모델이 아니라 기준점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뜻한다. 즉 좋은 공공도서관은 표준 도면을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도시가 자기 맥락에 맞는 답을 만들도록 자극한다.
도서관의 역할은 인터넷 액세스에서 저널리즘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진화했지만, 정치 지도자들이 중요한 사회적, 지적, 문화적, 경제적 역할을 인식하지 못함에 따라 수많은 도서관이 여전히 문을 닫고 있습니다.
브루클린 공립 도서관의 장서는 1,300만 권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2017년에 810만 명의 사람들을 본관과 59개의 이웃 분관으로 끌어들인 수많은 명소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이 방문자 중 약 백만 명이 69,000개의 무료 프로그램에 참석했으며 집에 인터넷이 없는 주민들은 안정적인 인터넷 사용을 위해 도서관에 의존했습니다.
도서관은 이민자, 외로운 사람, 노숙자를 환영하는 중요한 사회적 인프라입니다. BPL은 또한 지역 학자, 예술가 및 디자이너의 지적 자원과 기술을 활용합니다. 비즈니스 서비스는 지역 사업가를 지원하고, 청년을 위한 저널리즘 프로그램과 수많은 기술 수업은 모든 연령대의 미디어 소비자를 미디어 제작자로 변화시킵니다.
도서관의 서비스와 프로그램은 종종 다른 공공 기관이 부족한 부분을 채웁니다. 외로운 사람, 노숙자, 편부모가 집세를 내기 위해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하는 가정의 아이들, 모두를 환영합니다. 이는 스톡홀름의 House of Culture의 도서관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곳에서 방문자들은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BPL은 3억 달러의 자본 수요 격차에도 불구하고 이를 달성했습니다. 그래도 다른 지역에 비하면 다행입니다. 미국에서 도서관은 주로 지역 자금에 의존하며 주 및 연방 정부는 약간만 지원합니다. 뉴욕시의 현 행정부는 도서관의 우선순위를 정했지만 예산이 모든 자본 요구와 서비스 열망을 충당하기에 충분하지 않고 이용자가 항상 더 긴 개방 시간을 청원하고 있지만 BPL이 새로운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최소한 정도입니다. 가지를 만들고 기존 가지를 개조하십시오. 즉, 지붕이 새고, HVAC 시스템이 고장나고, 충전이 필요한 대중을 위한 전원 콘센트가 너무 적은 시설이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도서관 방치는 성가신 사회 문제를 악화시키고 민주적 대중 사이의 간극을 심화시킬 뿐입니다.’
한편, 지원이 덜한 지방 정부가 있는 다른 도서관은 영구적인 파손, 제한된 개방 시간, 축소된 장서 및 폐쇄에 직면해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보수적인 정부의 부상은 정치적 동기가 있는 긴축 조치로 이어졌고 문화와 교육에서 국방으로 자금을 재할당했습니다. 미국 오레곤에서 영국 더비셔까지 도서관이 문을 닫고 있습니다.
2010년 이후 영국 전역에서 약 500개의 도서관이 문을 닫았고 많은 도시와 마을은 도서관을 계속 개방하기 위해 자원 봉사자들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선은 ‘큰 정부’의 필요성을 제거하는 권한이 부여되고 자비로운 대중인 큰 사회의 실현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가장 취약한 시민에게 중요한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의 실패를 감추기도 합니다. 자원 봉사자는 제공할 법적인 자격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적으로 상업적인 자산이 아닌 사회의 문화적 자산을 대표해 온 제도에 대한 국가의 포기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공동체가 자유롭고 포괄적으로 모여 공공 문화를 실천하고 구현하는 공공 장소의 포기를 표시합니다.
특히 도서관에 대한 방치는 성가신 사회 문제를 악화시키고 민주적 대중 사이의 간극을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가장 강력한 분열 세력 중 일부는 (비)정보적입니다. 트롤에 휩싸인 소셜 미디어, 공포를 조장하는 당파 뉴스, 솔직하지 못한 정부 대변인, 비애에 이끌리고 인식론적으로 공허한 국가 원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집단적으로 도움이 되는 도구와 플랫폼(가상 및 물리적)입니다. 정보에 입각한 시민에게 매우 중요한 지식 자원과 공적 영역을 재평가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뢰성, 진실성 및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을 배우고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아이디어에 참여할 수 있는 포괄적인 포럼입니다. 내가 설명하는 것은 정보 자원, 디지털 리터러시 프로그램 및 토론을 위한 공개 포럼에 대한 무료 액세스를 제공하는 우리 도서관입니다.
‘도서관을 스마트폰과 동일시했다’
유감스럽게도 훌륭한 공공 도서관 유산이 있는 일부 지역에서는 정부가 이를 지원해야 한다는 역사적 의무감을 포기했습니다. 도서관에 대한 강력한 전통이 없는 다른 지역 , 예를 들어 중국과 중동에서 새로운 도서관이 싹트고 있는 것을 보면 당혹스럽습니다 . 그러나 카네기 제국에서도 브루클린, 캘거리, 포틀랜드와 같은 많은 성공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모든 도서관에 충분한 자금 지원, 직원 배치, 비축 및 유지 관리가 제공 된다면 아마 번창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저를 연민과 실망과 희망으로 가득 채웁니다. 그러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도서관이 쇠퇴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이 잡지를 위해 그랬던 것처럼 그 몰락을 애도하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입니다. 우리 도서관은 쇠퇴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는 도서관에 대한 정책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많은 커뮤니티에서 정치 지도자들은 사회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모두를 위해 자신이 수행하거나 수행할 수 있는 중요한 사회적, 지적, 문화적, 경제적 역할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양 있는 대중을 양성하는 것은 평생 공동의 책임입니다. 우리는 핸드헬드 장치가 장소 기반의 인본주의적 조직의 모든 기능(정보 및 사회적)을 수행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서 도서관을 스마트폰과 동일시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용자 계약을 읽고, 소셜 미디어 계정의 개인 정보 설정을 변경하고, Facebook에서 ‘필터 거품’을 피함으로써 허위 정보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고 가정합니다. 그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인식론적, 문화적 ‘전쟁’은 제도적, 국가적, 지정학적으로 우리 각자보다 더 큽니다. 책 더미와 대출 데스크에서 시작되는 공공 방어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우리 정부와 기업, 계획가 및 건축가는 더 많은 스마트 도시와 지능형 건축 시스템을 구축하느라 바쁘지만 대중의 지성은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책을 위한 건물에 담긴 지혜를 잊었습니다.
이 글은 AR 2018년 12월/2019년 1월에 실렸습니다. 사본을 구입하려면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커뮤니티 모임의 허브부터 한적한 피난처, 배움의 장소, 학습의 장소까지,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대출하는 장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도서관으로 개조된 캐나다 교회, 참여 디자인과 현지 자재를 사용하여 지어진 부룬디 무잉야의 첫 번째 도서관, 핀란드에서 가장 큰 학술 도서관 등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15곳의 도서관을 소개합니다. 잠시 시간을 내어서 각 도서관의 독특한 특징을 살펴보세요.
Strasbourg의 National University Library (BNU)는 ANMA의 재활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찾았습니다. 독일 점령기(1871년)에 지어진 건물에 위치한 이 건축물은 외관의 조형과 돔을 강조하는 기념비적인 건축 양식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내부에 새롭고 현대적인 공간을 조성하고자 했습니다. 27미터의 나선형 계단이 도서관의 모든 층을 연결합니다.
상파울루에 있는 이 서점(2015년 올해의 건물 수상작)은 엄밀히 말해 도서관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도서관처럼 기능합니다. 단순히 책을 구입하는 장소를 넘어 사람들이 책을 읽고, 어울리고,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 건축가. 이를 위해 최상층에는 21미터 너비의 관람석을 설치하여 방문객들이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과 소규모 콘서트 및 강연을 개최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합니다.
마을 중심가에서 떨어진 조용한 피난처를 제공하는 이 도서관은 산 속에 자리 잡고 있어 풍경과 조화를 이루며 한적한 곳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합니다. 스토브에 연료를 공급하는 데 사용되는 나뭇가지와 같은 현지 재료를 사용하여 건물을 장식했습니다. 나무 막대기는 “밝은 빛을 부드럽게 하고 공간 전체에 고르게 퍼지게 하여 완벽한 독서 분위기를 제공합니다.”
버밍엄에서 가장 큰 광장의 중심부에 위치한 이 도서관은 내부에 8개의 원형 홀이 있으며, 각 홀마다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1882년에 지어진 셰익스피어 기념실로 정점을 이룹니다. 입구 앞의 캔틸레버는 쉼터를 제공하며 광장에서 일어나는 행사를 볼 수 있는 발코니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베를린 자유대학교의 도서관은 (아마도 이 공간에서 “수백 시간”을 공부해야 할) 학생들을 위해 설계되었으며, “매스 콘크리트 구조와 가벼운 외피가 결합된” 건물입니다. 자연광과 공기가 공간을 채우고 열람용 책상이 각 층을 감싸고 있으며, “서지 컬렉션은 4층 높이의 중앙 코어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멕시코시티의 18세기 건물 안에 자리한 이 도서관은 170평방미터에 불과한 공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멕시코 작가 하이메 가르시아 테레스에게 헌정된 이 도서관은 “벽에 매달려 있는” 두 개의 긴 책장이 “바닥 패턴을 반영하는 리듬”을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빈 책장”이 천장에 매달려 있어 “책장과 같은 방식으로 변조된 일련의 멀리언을 통해 빛을 필터링”합니다.
핀란드에서 가장 큰 학술 도서관인 이 도서관은 다양한 사용자를 위해 설계되었으며, 그룹 작업을 위한 방음실, 조용한 열람실, 정보 및 소장 자료 구역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커다란 아치형 개구부는 도서관을 외부와 구별되는 외관을 제공하고 내부에 자연 채광을 제공하며, 곡선형 벽돌 외관은 “인접한 건물에 의해 형성된 거리 선 안에” 도서관을 통합합니다.
토속적인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아 ‘참여적 접근 방식’으로 지어진 이 도서관은 무잉야에 세워진 최초의 도서관입니다. “현지에서 조달한 압축 흙 블록”을 사용하여 교차 환기가 가능하도록 하고 저녁에는 도서관에 환한 빛을 비췄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특별한 독서 공간은 “아이들이 책을 읽으며 꿈을 꿀 수 있는 중이층으로 사이잘 로프로 만든 거대한 해먹”으로 덮여 있습니다.
정말이지 오늘은 책들이 바람을 쐬는 날이 된 듯하다. 이탈리아 곳곳에서 길거리 도서관을 겨냥한 파괴 행위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책들이 잠시 머물거나 교환되기를 기다리며 놓여 있는 그곳에서 훼손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목격담은 이런 파괴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하며,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전해진다.
어떤 상징도 한 번의 행위로 무너질 수 있다. 이번 경우는 ‘함께 읽기’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최근 칼라브리아(Tre Calabria) 트레비사체(Trebisacce) 해변 산책로에 자리 잡은 작지만 소중한 ‘카세타 데이 리브리(casetta dei libri)’가 황당한 공격을 받았다. 파괴자는 찾아와 구조물을 훼손했지만, 책 한 권도 가져가지 않은 채 사라졌다. 많은 여름 여행객이 오가는 그곳에서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은 무심함을 드러내는 씁쓸한 풍경이었다.
한편 베네토(Veneto) 지방의 작은 마을 폰테키오 폴레시네(Pontecchio Polesine)에서는 ‘카사 델 리브로(Casa del Libro)’라 불리는 노천 도서관이 엉망으로 파괴됐다. 문짝은 뜯겨 나갔고, 책들은 마치 하찮게 버려진 물건처럼 바닥에 뒤엉켜 흩어져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하며, 단순히 스릴을 찾는 청소년들의 소행이거나 더 나쁘게는 무책임함의 극치라고 지적했다.
또 한 번의 사건이 일어났다.
나폴리 북쪽 30킬로미터에 위치한 카세르타(Caserta)에서는 ‘책 읽는 도시(Città che Legge)’라는 이름을 달고 독서 문화를 상징적으로 알리고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 책들이 뜯겨 나가 버려지고, 길바닥에 나뒹구는 일이 벌어졌다. 공공장소에서 책을 나누기 위해 마련된 섬세한 작은 상자 ‘카세타 데이 리브리(casetta dei libri)’는 순식간에 파괴된 현장으로 변했다.
카세르타뉴스(CasertaNews)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지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 공간에는 레오나르도 샤샤(Leonardo Sciascia)의 소설 《부엉이의 날(Il giorno della Civetta)》, 대통령 레오네(Leone)의 전기 등 중요한 작품들이 담겨 있었으며, 자유롭게 문화를 확산시키려는 취지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 책들은 찢기고 흩날리며 쓰레기처럼 버려졌다. 분노한 시민 일부가 책을 지키고 되살리려 애썼지만 끝내 막을 수 없었다.
더 황당한 점은 따로 있다. 카세르타(Caserta)는 최근 ‘책 읽는 도시(Ville qui lit)’라는 지위에 따라 문화부로부터 4만1천 유로의 보조금을 받았다. 이 예산은 독서 문화를 강화하기 위한 사업에 쓰이도록 마련된 것이었다. 독서 전용 벤치, 북크로싱(bookcrossing) 프로그램, 그리고 바로 이 ‘카세타 데이 리브리(casetta dei libri)’ 같은 프로젝트가 그 대상이었다.
문화적 야망과 타락 사이
세심하게 정비된 공원 한가운데, 문화도시라는 이름을 자랑스럽게 단 도시에서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질까. 이해할 수 없는 야만적인 행위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책들이 뜯겨 나가 길바닥에 버려졌고, 누구의 눈길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됐다. 그러나 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그 존재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로터리클럽(Rotary Club)이나 지역 단체가 운영하는 북크로싱(bookcrossing) 프로젝트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원칙 위에 세워져 있다. 책 한 권을 두고 다른 한 권을 가져가며, 그렇게 독서의 즐거움을 순환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유조차 알 수 없는 무례한 행위가 이 자유로운 공유의 철학을 정면으로 가로막고 있다.
지역사회에 대한 공격인가?
이것은 단순히 나무 상자가 부서진 사건이 아니다. 공동체의 끈이 끊어진 것이다. 세대와 세대, 거리와 거리, 서로 나누던 이야기들을 이어주던 통로가 막혀버린 셈이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지루함 때문일까, 차가운 도발일까. 다만 분명한 것은 자원봉사자, 가족, 지역 단체들이 이 상자를 삶의 공간이자, 어린이와 어른을 잇는 독서의 다리로 여겨왔다는 사실이다.
카세르타(Caserta)에서는 이 모순이 더욱 뼈아프다. 문화에 투자하고, 공간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성대하게 문을 열었는데, 곧장 사회적 가치를 짓밟는 씁쓸한 잔해와 마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그냥 넘길 수는 없다. 독서의 모범 도시를 자처하는 곳에서 책 나눔의 공간이 문학의 쓰레기장으로 변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 이번 일은 두 가지를 일깨운다. 이유 없는 파괴 행위의 죄책감, 그리고 공유 문화 공간을 지켜야 할 우리의 공동 책임이다.
작은 이탈리아 도시에서는 이런 물음이 나온다. 그 상자를 다시 고칠 수 있지 않을까. 뜯겨 나간 책 한 권이 오히려 더 강한 경각심과 시민적 참여를 불러오지 않을까. 구겨진 표지 한 장 뒤에는 언제나 작가가 빚어낸 세계가 숨어 있다. 그것은 분명히 지켜내야 할, 우리 모두의 공유된 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