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리쇠르 도서관, ‘동화 읽어주기’로 아이들을 다시 도서관으로 초대하다
노르웨이 남부 아그데르(Agder)의 작은 해안도시 리쇠르(Risør)에서 도서관이 어린이를 위한 전통적인 이야기 프로그램을 이어가고 있다. 아우스트아그데르 블라드(Aust-Agder Blad)는 리쇠르 도서관(Risør bibliotek)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듣는 ‘동화 시간(Eventyrstund)’에 어린이와 가족을 초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도서관을 ‘책을 빌리는 곳’에서 ‘이야기를 함께 경험하는 곳’으로
- 리쇠르 도서관의 동화 시간은 단발성 행사가 아니라 지역 도서관이 오랫동안 유지해 온 어린이 독서문화 프로그램의 연장선에 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리쇠르 도서관은 어린이들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동화 시간(Eventyrstund)을 마련해 이용자를 초대하고 있다. 겉으로 보면 사서나 진행자가 책을 읽어주는 작은 행사이지만, 리쇠르에서는 이러한 방식의 프로그램이 이미 오랜 기간 도서관 서비스의 일부로 운영돼 왔다.
리쇠르시(Risør kommune)의 2012년 연차보고서를 보면 당시 도서관은 매주 화요일 유치원 어린이를 대상으로 이야기 시간을 운영했다. 같은 해 초등학교 3·5·7학년을 대상으로 한 문학 프로그램에는 모두 215명의 학생이 참여했고, 도서관 전체 자료 대출은 3만4,992건이었다. 리쇠르시 2012년 연차보고서에 나타난 수치다.
2013년에도 리쇠르 도서관은 공사로 인해 약 3개월 동안 완전히 문을 닫고 일부 기간에는 축소 운영을 했지만, 유치원을 위한 이야기 시간을 격주 화요일마다 계속하고 두 곳의 유치원 도서관도 운영했다. 시설 운영에 제약이 있었던 시기에도 어린이 독서 프로그램을 핵심 서비스로 유지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리쇠르시 2013년 연차보고서
현재 리쇠르 도서관은 리쇠르후세트(Risørhuset) 안에 자리하고 있다. 관광 안내기관인 비지트 노르웨이(Visit Norway)는 이곳을 “어른과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도서관이자 만남의 장소”로 설명하며, 주요 프로그램 가운데 작가 방문과 어린이 동화 시간을 별도로 소개한다. 건물은 2013년 리모델링됐으며 어린이 자료 공간도 독립적으로 마련돼 있다. Visit Norway
디지털 시대에도 ‘누군가 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
- 어린이 대상 이야기 프로그램의 핵심은 책 한 권을 읽는 데 있지 않고, 언어·상호작용·정서적 경험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데 있다.
도서관의 이야기 시간은 가장 오래된 독서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다. 화려한 디지털 장비나 대규모 예산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어린이가 책과 사람, 장소를 하나의 경험으로 연결하도록 한다. 특히 어린아이에게는 혼자 책을 읽는 것보다 어른의 목소리를 듣고 그림을 보며 반응하는 과정 자체가 독서의 첫 경험이 된다.
미국소아과학회(American Academy of Pediatrics)는 2024년 정책보고서에서 영유아기부터 함께 책을 읽는 공유 독서(Shared Reading)를 권고했다. 보고서는 출생 직후부터 최소한 유치원 입학 시기까지 책을 함께 읽는 활동이 언어·인지·사회정서 발달을 지원한다고 설명한다. 미국의 2020~2021년 조사에서는 5세 이하 어린이 가운데 가구소득이 연방빈곤선의 400% 이상인 가정에서는 54%가 매일 책을 읽어준 반면, 빈곤선 이하 가정에서는 그 비율이 24%에 그쳤다. 독서 환경 자체에도 상당한 사회경제적 격차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American Academy of Pediatrics, 2024
단순히 책을 소리 내 읽어주는 것보다 어린이에게 질문하고, 답을 기다리고, 그 답을 확장해 다시 이야기에 연결하는 대화식 읽기(Dialogic Reading)가 특히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2026년 국제교육연구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Educational Research)에 발표된 메타분석은 2000~2025년의 64개 연구, 어린이 1만463명, 효과크기 260개를 종합했다. 그 결과 대화식 읽기의 전체 읽기 능력 효과크기는 g=0.76, 해독 능력은 g=1.10, 독해 능력은 g=0.74로 나타났다. Tang, Lau & Du, 2026
다만 모든 ‘읽어주기’가 동일한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공유 독서 연구를 분석한 또 다른 메타분석에서는 전체 언어발달 효과가 g=0.194로 비교적 작게 나타났고, 적극적 비교집단을 둔 연구에서는 g=0.028까지 낮아졌다. 이는 단순히 책을 읽어주는 횟수를 늘리는 것보다 어린이의 반응을 이끌어내고 대화를 만드는 프로그램 설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Noble et al., 2019
조용히 듣는 행사에서 참여형 독서 경험으로
- 리쇠르 사례의 중요한 변화는 도서관이 ‘자료 제공’에서 ‘관계와 경험의 설계’로 역할을 넓히고 있다는 점이다.
리쇠르 도서관이 운영하는 이야기 시간은 새로운 형식의 행사는 아니다. 오히려 오래된 프로그램을 반복적으로 운영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어린이에게 도서관 방문이 특별한 행사가 아니라 일상적인 문화생활이 되려면 단발성 대형 행사보다 정해진 시간에 반복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도서관계에서도 이야기 시간은 이미 오래전부터 어린이 서비스의 대표적인 형태로 인식돼 왔다. 노르웨이 도서관협회 관련 전문지 Bibliotekaren에 소개된 사례에서는 한 도서관이 57년 동안 매주 이야기 시간을 운영했으며, 한 번에 5~40명의 3~6세 어린이가 참여했다고 기록돼 있다. 해당 기사에 사용된 사진 역시 리쇠르 도서관의 이야기 시간 모습을 사례로 소개했다. Bibliotekaren
리쇠르 도서관의 현재 운영체계도 이러한 프로그램을 뒷받침한다. 리쇠르후세트의 안내에 따르면 등록 이용자는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무인 개방형 도서관(Meråpent bibliotek)을 이용할 수 있다. 일반적인 직원 근무시간 외에도 책을 빌리고 반납하거나 공간에서 읽고 공부하고 머물 수 있도록 접근 시간을 넓힌 것이다. Risørhuset
이 구조에서 이야기 프로그램은 별개의 행사가 아니라 공간 이용의 입구가 된다. 어린이가 이야기 시간을 통해 도서관을 처음 방문하고, 프로그램이 끝난 뒤 어린이 자료 공간을 탐색하고, 가족과 다시 방문하는 흐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비지트 노르웨이는 리쇠르 도서관을 단순한 자료실보다 “도서관이자 만남의 장소”로 소개하고 있다. Visit Norway
한국 도서관에도 필요한 것은 ‘행사의 규모’보다 반복되는 독서 경험이다
- 한국에서도 어린이의 독서율 자체는 높지만, 이를 지속적인 독서 습관과 도서관 이용으로 연결하는 프로그램 설계가 중요하다.
한국의 어린이·청소년 독서 수준을 보면 리쇠르 사례를 단순히 ‘독서를 하지 않는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볼 필요는 없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서 학생의 종합 독서율은 95.7%였다. 학교급별로는 초등학생 99.7%, 중학생 94.7%, 고등학생 92.7%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조금씩 낮아졌다. 문화체육관광부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
2025년 조사에서도 학생의 연간 종합독서율은 94.6%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따라서 국내 어린이 도서관 프로그램의 과제는 단순히 ‘책을 한 권 더 읽게 하는 것’에서 그치기보다, 어린 시절 형성된 독서 경험이 청소년기와 성인기까지 지속되도록 만드는 데 있다. 2025년 국민독서실태조사 관련 분석
리쇠르 사례에서 참고할 수 있는 첫 번째 요소는 정기성이다. 2012년에는 매주, 2013년에는 격주로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 시간을 유지했다. 어린이가 기억하는 것은 한 번의 대형 독서축제보다 “도서관에 가면 정기적으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예측 가능한 경험일 수 있다.
두 번째는 상호작용성이다. 최근 64개 연구와 1만463명을 분석한 연구에서 대화식 읽기가 읽기 능력에 g=0.76의 효과를 보인 결과를 고려하면, 국내 도서관의 동화구연도 단순 낭독보다 어린이에게 질문하고 그림을 관찰하게 하며 다음 장면을 예상하게 하는 방식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International Journal of Educational Research, 2026
세 번째는 공간과 프로그램의 결합이다. 이야기 시간이 끝난 즉시 관련 그림책을 볼 수 있고, 어린이가 바닥이나 낮은 좌석에서 편하게 머물며 부모와 책을 다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프로그램실과 어린이 자료실을 분리해서 생각하기보다 이야기 듣기·책 탐색·자유 독서가 하나의 이용자 여정(User Journey)으로 이어지도록 구성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결국 리쇠르 도서관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새로운 기술이나 거대한 예산이 아니다. 어린이가 누군가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듣고, 같은 공간에서 책을 발견하고, 다시 도서관을 찾도록 만드는 단순한 경험의 반복이다. 공공도서관의 어린이 서비스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얼마나 크게 개최했는가’보다 도서관과 독서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을 얼마나 오래 축적하게 하는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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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austagderblad.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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