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복도에서 조용한 독서 공간으로…노르웨이 스코그스보그 학교가 새 도서관을 만든 이유
노르웨이 외위가르덴(Øygarden) 지방자치단체의 스코그스보그 학교(Skogsvåg skule)가 기존 개방형 학교도서관을 별도의 독립된 공간으로 이전하고, 학생이 직접 운영에 참여하는 새로운 학교도서관을 열었다. 단순히 책장을 옮긴 공간 개선이 아니라 독서 집중도를 높이는 공간, 또래가 책을 권하는 참여형 운영, 정기적인 도서관 수업과 북카페가 결합된 독서교육 환경으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노르웨이는 최근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읽기 능력 저하가 중요한 교육 과제로 나타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26년 9월 발표한 PISA 2025 노르웨이 국가 보고서에 따르면 노르웨이 학생의 읽기 성취도는 2018년 이후 참가국 가운데 비교적 큰 폭으로 하락했으며, 2015년과 비교해 읽기에서 기초수준(Level 2)에 미달하는 학생 비율도 19%포인트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스코그스보그 학교의 사례는 학교도서관을 독서교육의 주변 시설이 아니라 일상적인 교육 인프라로 다시 설계하려는 움직임으로 읽을 수 있다.
복도 옆 책장에서 독서교육의 중심 공간으로
- 기존 도서관의 가장 큰 문제는 책의 부족보다 개방된 공간에서 발생하는 지속적인 방해였다.
외위가르덴 지방자치단체의 기사에 따르면 기존 학교도서관은 학교의 공용공간인 롱라그뤼토(Ronglagryto)의 일부에 설치돼 있었다. 학생과 교직원이 계속 오가는 개방된 공간이었기 때문에 도서관을 이용하는 학생들이 통행으로부터 방해를 받았다. 학교는 인접한 빈 교실을 사용할 수 있게 되자 도서관 전체를 이곳으로 이전했다. 교사 리타 나겔센(Rita Nagelsen)은 기존 공간에서는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방해를 받았지만 새 도서관은 폐쇄된 별도 공간이라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외위가르덴 지방자치단체 기사
- 이번 이전은 스코그스보그 학교가 이미 운영해 온 독서교육 체계를 공간적으로 뒷받침하려는 변화다.
학교가 공개한 2025~2026학년도 학교도서관 운영계획을 보면 당시 학생은 약 235명, 도서관 장서는 약 3,000권이었다. 각 학년에는 매주 1회의 정규 도서관 시간이 배정돼 있었고, 매일 독서시간, 큰 학생이 어린 학생에게 책을 읽어주는 활동, 점심시간 독서클럽, 연간 독서 프로젝트 등이 이미 운영되고 있었다. 따라서 새 도서관은 없던 서비스를 새로 만든 것이라기보다 기존 독서교육 프로그램을 안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을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학교가 공간을 바꾼 배경에는 읽기 능력 향상이라는 명확한 교육 목표가 있다.
스코그스보그 학교는 난독증 친화학교(Dyslexia-friendly School)를 표방하고 있으며, 교장 잉그리드 헤스타드(Ingrid Hestad)는 이번 도서관 조성이 외위가르덴의 언어교육 정책과 학교의 독서문화 강화 전략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이러한 배경은 국가적인 읽기 성취도 문제와도 연결된다. OECD PISA 2022에서 노르웨이 15세 학생의 읽기 평균은 477점이었으며, 학생의 27%가 읽기 기초수준인 Level 2에 도달하지 못했다. 남학생의 경우 이 비율은 34%, 여학생은 20%였다.
공간만 바꾼 것이 아니라 책을 선택하고 읽는 방식까지 바꿨다
- 새 도서관은 조용한 독서공간과 충분한 좌석을 확보해 이전 개방형 공간의 문제를 직접 해결했다.
새 공간에 대한 학생들의 첫 반응은 공간적 변화에 집중된다. 7학년 학생이자 도서관 앰배서더인 스티네(Stine)는 새 도서관을 편안한 공간으로 평가했고, 특히 좌석이 충분하다는 점을 장점으로 들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교사 역시 통행자가 계속 지나갔던 기존 공간에 비해 독립된 방으로 옮긴 뒤 독서 활동에 대한 방해가 줄어들었다고 평가했다. 공간을 독립시킨 결정은 단순한 인테리어 변경이 아니라 집중이 필요한 독서행동과 통행이라는 서로 충돌하는 기능을 분리한 공간계획이라는 의미가 있다. 출처: Øygarden kommune
- 책의 종류도 학생의 실제 독서 취향을 반영해 조정했다.
학교는 학생들이 사실책과 논픽션에 높은 관심을 보인다는 점을 확인하고 관련 도서를 새로 확충했다. 같은 책을 여러 학생이 함께 읽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일부 도서는 복수의 동일본으로 구입했다. 이는 장서를 ‘한 권씩 다양하게 보유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또래 독서(peer reading)와 대화를 지원하도록 구성하는 방식이다. 기사에서 학생들은 사실책, 만화, 모험·스릴러 등 각기 다른 선호를 직접 이야기하고 있어 이용자의 실제 독서 취향이 장서 구성에 반영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도서관을 일회성 공간 개선이 아니라 정규 교육과정과 연결된 장소로 운영한다.
학교는 모든 학생을 독서활동에 참여시키고 도서관 수업의 기본 운영안을 마련했으며, 2026~2027학년도에는 학생과 교직원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북카페(Book Café)도 운영할 계획이다. 방과후학교에 해당하는 학교여가활동(SFO) 학생도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교사 리타 나겔센은 학교도서관 수업과 관련된 별도의 계속교육 과정인 ‘좋은 도서관 시간(Den gode bibliotektimen)’을 이수하고 있어 공간 개선과 교사의 전문성 개발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출처: Øygarden kommune
학생이 이용자에서 운영자로 바뀐 학교도서관
- 새 도서관의 핵심적인 변화 가운데 하나는 7학년 학생 8명이 ‘도서관 앰배서더’로 운영에 참여한다는 점이다.
2026년 개관 기사에는 에마(Emma), 순니바(Sunniva), 말레네(Malene), 스티네(Stine), 이선(Ethan), 아스비외른(Asbjørn), 이사(Isa), 아론(Aaron) 등 8명의 7학년 학생이 도서관 앰배서더로 소개돼 있다. 학생들은 당번제로 도서관을 관리하며 도서 대출과 반납을 스캔하고, 반납된 책을 정리하고, 다른 학생에게 읽을 책을 추천한다. 이선은 매주 화요일 1시간씩 도서관 근무를 맡는다고 설명했다. 출처: Øygarden kommune
- 모든 학생에게 QR코드가 적용된 개인 도서관카드를 제공하면서 학생 참여와 대출 시스템도 연결했다.
이번 학년도부터 학생들은 각자 QR코드가 포함된 도서관카드를 사용한다. 도서관 앰배서더는 대출·반납 과정에서 이 시스템을 직접 활용한다. 과거 학교 운영계획에서도 6~7학년 학생을 도서관 보조학생으로 선발해 대출·반납·정리뿐 아니라 전시, 포스터, 책 추천을 담당하도록 했는데, 새 도서관에서는 이러한 학생 참여가 8명의 공식 앰배서더 체제로 확장된 셈이다. 출처: Skogsvåg skule 학교도서관 운영계획
- 또래가 또래에게 책을 추천하는 구조는 학교도서관을 서비스 제공 공간에서 참여형 공동체로 전환한다.
스티네는 기사에서 어린 학생이 책을 고를 때 교사보다 7학년 학생이 도와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는 학생들이 나이가 많은 학생들을 자연스럽게 따르는 관계를 도서 추천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학교가 이전부터 운영해 온 ‘상급생이 저학년에게 읽어주기’와 연결하면, 도서관은 교사가 학생에게 독서를 지도하는 단방향 구조에서 학생 간 독서문화가 순환하는 구조로 발전하고 있다.
한국 학교도서관에도 필요한 것은 ‘예쁜 공간’보다 운영과 공간의 결합이다
- 스코그스보그 사례가 보여주는 첫 번째 시사점은 학교도서관 공간의 질을 면적이나 디자인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학교가 가장 먼저 해결한 문제는 규모가 아니라 통행 동선과 독서활동의 충돌이었다. 공용공간에 있던 서가와 독서공간을 독립된 방으로 이동시킴으로써 소음과 시각적 방해를 줄였다. 도서관디자인연구소가 소개한 카페형 도서관 독서 공간이 중등학생 독서 태도에 미치는 영향에서도 편안하고 책이 풍부한 별도 독서환경에서 자유 독서를 실시했을 때 학생들의 독서환경에 대한 편안함과 독서시간에 대한 태도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즉 학교도서관에서는 ‘공간이 있는가’보다 독서행동에 적합한 환경인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된다.
- 두 번째는 공간 개선과 독서 프로그램을 동시에 설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스코그스보그 학교는 새 공간을 만든 뒤 끝내지 않고 정규 도서관 수업, 북카페, 또래독서, 낭독, 도서관 앰배서더, QR 대출카드를 연결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공간과 교육 프로그램을 함께 설계할 필요가 있다. 도서관디자인연구소가 소개한 국내 자료에 따르면 경기도교육청은 학교도서관 공간개선을 위해 100개 학교에 204억 원을 투입했으며, 2023년 학교도서관 활용수업은 25만7,568시간으로 전년의 15만4,726시간보다 66.5% 증가했다. 독서교육 프로그램 참여 학생도 230만4,902명에서 308만8,431명으로 약 34% 증가했다. 출처: 도서관디자인연구소 관련 연구 정리
- 세 번째는 학생을 단순한 이용자가 아니라 학교도서관을 함께 만드는 운영 주체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8명의 학생 앰배서더가 대출·반납, 정리, 추천을 담당하는 스코그스보그 방식은 학생 참여를 상징적인 의견수렴 수준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실제 업무와 책임을 부여함으로써 도서관에 대한 학생의 소속감과 주인의식을 높이는 구조다. 국내 학교도서관 공간혁신에서도 학생 워크숍과 이용자 의견수렴을 설계 단계뿐 아니라 개관 이후 운영 단계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의 지원으로 제작된 ‘학교도서관 공간혁신 매뉴얼’ 발간 역시 학교도서관 개선 과정에서 공간구성과 이용자의 요구를 함께 다루고 있다.
- 마지막으로 학교도서관은 읽기 성취도뿐 아니라 학생이 안심하고 머물 수 있는 일상적 장소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도서관디자인연구소가 소개한 국제 학교도서관 인력 조사(International School Library Workforce Survey)는 63개국 971명의 학교도서관 관계자를 대상으로 학교도서관과 학생 웰빙의 관계를 조사했다. 이 연구는 학교도서관을 정보와 책을 제공하는 시설뿐 아니라 학생의 정서적 안정과 포용을 지원하는 ‘안전한 공간(safe space)’으로 평가한다. 학교도서관은 왜 안전한 공간이 되어야 하는가: 63개국 국제조사가 보여준 학생 웰빙의 조건라는 연구가 보여주듯, 집중해서 읽을 수 있고 필요할 때 머무를 수 있는 작은 독립공간을 마련한 스코그스보그의 선택 역시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
결국 스코그스보그 학교의 새 도서관에서 중요한 것은 새 책장이나 새로운 방 자체가 아니다. 방해받지 않는 독서환경을 만들고, 학생의 선택을 장서에 반영하며, 또래가 서로 책을 추천하고, 정규 수업과 북카페를 연결하고, 학생에게 실제 운영 권한을 부여한 것이 핵심이다. 학교도서관의 공간혁신이 효과를 가지려면 공간·장서·수업·운영·학생 참여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관련 자료
- [논문] 카페형 도서관 독서 공간이 중등학생 독서 태도에 미치는 영향
- [논문] 학교도서관은 왜 안전한 공간이 되어야 하는가: 63개국 국제조사가 보여준 학생 웰빙의 조건
- ‘학교도서관 공간혁신 매뉴얼’ 발간
- [뉴질랜드] 학교도서관 위기, 전문 사서 부족과 지속적인 투자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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