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14세 교황 “도서관은 책만 있는 곳이 아니라 관계와 생각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곳”

책을 보존하는 공간에서 사람과 생각이 만나는 공간으로
- 레오 14세 교황은 도서관을 단순한 장서 보관 시설이 아니라 관계와 생각의 교류를 통해 살아 움직이는 문화기관으로 규정했다.
레오 14세(Pope Leo XIV) 교황은 2026년 9월 14일 바티칸 사도문서고(Vatican Apostolic Archive)와 바티칸 사도도서관(Vatican Apostolic Library)을 방문해 직원들과 만났다. 교황 취임 이후 사도도서관을 공식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그는 바티칸 사도도서관에서 열린 ‘AQVA. 재앙과 경이(AQVA. Catastrophe and Wonder)’ 전시도 개막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교황은 두 기관의 역할을 “교회와 인류 전체를 위해 문화의 발전과 확산에 봉사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출처: Vatican News
특히 교황은 바티칸 사도도서관을 인간의 ‘심장’에 비유했다. 심장이 수축기(systole)와 이완기(diastole)를 반복하면서 생명을 유지하듯 도서관도 안으로 모으고 보존하는 기능과 외부 세계를 향해 개방하는 기능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는 의미다. 여기서 수축은 조용한 연구 환경, 보존, 존중, 세심한 관리에 해당하고, 이완은 외부 연구자와의 교류, 문화적 개방, 새로운 지식의 확산을 의미한다. 이는 보존과 개방을 서로 충돌하는 가치가 아니라 하나의 기관을 살아 있게 하는 두 가지 움직임으로 해석한 것이다. 출처: Vatican News
- 바티칸 사도도서관의 규모를 고려하면 이러한 발언은 상징적인 표현을 넘어 세계적인 지식유산 기관의 운영 방향과 연결된다.
바티칸 사도도서관 공식 자료에 따르면 현재 이곳에는 약 18만 점의 필사본과 기록문서, 약 200만 권의 인쇄도서, 약 8,300권의 인큐나불라(incunabula·1501년 이전 초기 인쇄본), 약 30만 점의 동전과 메달, 10만 점 이상의 판화·드로잉 등 그래픽 자료, 15만 장 이상의 사진이 보존돼 있다. 종교나 출신, 문화적 배경과 관계없이 일정한 연구 자격을 갖춘 연구자에게 자료를 개방한다는 원칙도 공식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출처: Vatican Apostolic Library
디지털화가 확대될수록 다시 강조되는 ‘도서관에 직접 가는 경험’
- 레오 14세 교황은 온라인 접근성을 확대하면서도 실제 도서관을 방문하는 경험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교황은 귀중한 자료에 대한 접근을 확대하기 위해 디지털화와 온라인 서비스를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정했다. 동시에 그는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도서관을 찾아가는 오랜 관습” 역시 보존하고 장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디지털 기술과 물리적 도서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두 방식의 역할을 구별해 함께 발전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출처: Vatican News
바티칸 사도도서관은 이미 디지털 바티칸 도서관(Digital Vatican Library)을 통해 필사본, 초기 인쇄본, 기록자료, 그래픽 자료, 동전과 메달 등 소장자료를 온라인으로 제공하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에는 국제 이미지 상호운용 프레임워크(International Image Interoperability Framework, IIIF)가 적용돼 고해상도 이미지를 연구와 교육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즉 디지털 접근은 원본을 대체하기보다 접근 범위를 세계적으로 확대하는 또 하나의 연구 인프라로 운영되고 있다. 출처: Vatican Apostolic Library
- 그러나 교황이 강조한 물리적 도서관의 가치는 자료 이용보다 ‘관계, 교류, 생각의 공유’에서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교황은 도서관이 “책으로 가득 찬 장소만이 아니라 관계와 교류, 생각의 공유를 통해 만들어지는 장소”라고 설명했다. 이 관점에서는 동일한 책과 자료를 온라인에서 볼 수 있더라도 연구자가 같은 공간에 머물고 우연히 대화하며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을 접하는 경험까지 완전히 디지털화하기는 어렵다. 국제도서관협회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of Library Associations and Institutions, IFLA) 역시 공공도서관을 시민의 일상 활동과 사회생활이 이루어지는 지역사회의 공공공간(community space)으로 설명하고 있다. 출처: IFLA
보존과 개방을 동시에 확장하는 바티칸 도서관의 변화
- 바티칸의 ‘개방’은 최근 등장한 정책이 아니라 19세기 후반부터 이어진 역사적 흐름이라는 점도 이번 연설에서 강조됐다.
레오 14세 교황은 자신의 이름과 같은 레오 13세(Pope Leo XIII)가 산업혁명 시기에 추진했던 개방 정책을 언급했다. 레오 13세는 바티칸 문서고를 세계 각국 연구자에게 보다 폭넓게 개방하고 도서관 접근성을 확대했다. 현재 사도도서관에는 문학과 신학뿐 아니라 식물학, 동물학, 의학, 법학, 예술, 경제학 등 여러 분야의 자료가 보존돼 있다. 바티칸 뉴스는 이러한 학문적 개방이 오늘날 일반화된 연구기관의 국제적 개방보다 앞서 추진됐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출처: Vatican News
- 자료의 증가로 기존 보존 공간이 부족해지면서 새로운 도서관·문서고 공간을 건립하는 실제 확장 사업도 추진된다.
같은 날 레오 14세 교황은 최근 수십 년 동안 성좌(Holy See)의 도서와 기록 생산량이 크게 늘어 기존 시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밝히고 바티칸 시국 내부에 새로운 건물을 건설하도록 지시했다. 새 건물은 바티칸 사도문서고와 사도도서관이 공간을 나누어 사용할 예정이며, 현대적인 건축·기술 기준을 적용하도록 했다. 이는 디지털화가 진행되더라도 원본 자료의 수집과 보존을 위한 물리적 공간은 계속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출처: Vatican News
바티칸 사도도서관의 현대적 역사는 15세기 중반 니콜라오 5세(Pope Nicholas V)가 교황청 장서를 학자들에게 개방한 데서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며, 1475년 식스토 4세(Pope Sixtus IV)의 교서 Ad decorem militantis Ecclesiae를 통해 제도적인 기반이 마련됐다. 약 550년에 걸친 역사 속에서도 ‘보존된 지식을 외부 연구자에게 제공한다’는 원칙이 이어져 왔다는 점에서 이번 연설은 새로운 방향을 선언했다기보다 기존 원칙을 디지털 시대에 다시 정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출처: Vatican News
한국 도서관에도 필요한 ‘자료·사람·관계’의 균형
- 이번 발언은 현대 도서관 정책에서 장서와 디지털 서비스뿐 아니라 체류와 만남, 공동체 형성 자체를 핵심 성과로 평가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이미 진행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6년 전국 공공도서관 통계조사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전국 공공도서관은 1,328개관으로 전년 1,296개관보다 2.5% 증가했다. 연간 공공도서관 방문자도 약 2억 3천만 명에 이르렀다. 문체부가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공공도서관을 ‘지역 공동체 거점’으로 표현한 점도 장서 중심 시설에서 생활권 사회 인프라로 기능이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2026년 전국 공공도서관 통계조사
이러한 변화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대화가 가능한 공간을 늘리는 데 있지 않다. 조용히 읽고 연구할 수 있는 공간과 사람들이 만나 대화하고 함께 활동하는 공간을 동시에 제공해야 한다. 레오 14세가 사용한 ‘수축과 이완’의 비유를 도서관 공간에 적용하면 집중과 고요함을 지원하는 공간은 안으로 향하는 기능이고, 커뮤니티·전시·프로그램·협업공간은 사회를 향해 열리는 기능이다. 어느 한쪽만 강화할 경우 현대 도서관이 요구받는 다양한 이용행태를 충분히 수용하기 어렵다.
- 결국 도서관의 미래 경쟁력은 더 많은 책을 보유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식이 사람과 만나 새로운 관계와 대화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국제도서관협회연맹의 2024년 동향 분석에서도 도서관 분야 전문가들은 앞으로 도서관에서 지역사회 중심성(community focus)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디지털 접근이 확대되는 동시에 디지털 격차와 사회적 단절 문제가 커지면서 누구나 비용 부담 없이 머물며 정보에 접근하고 다른 사람과 접촉할 수 있는 장소의 가치가 오히려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IFLA Trend Report 2024
따라서 레오 14세의 발언은 종교기관의 오래된 도서관에 관한 이야기로만 볼 필요가 없다. 약 200만 권의 인쇄자료와 18만 점의 필사본·기록자료를 보존하는 세계적인 연구도서관조차 미래의 핵심 가치로 관계와 교류를 강조했다는 사실은 의미가 크다. 앞으로 도서관을 계획하고 평가할 때 장서량과 좌석수, 대출량뿐 아니라 이용자의 체류, 교류, 학습, 공동체 활동을 어떻게 지원하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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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vaticannews.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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