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친구를 만든다, 넬슨 공공도서관의 ‘스피드 프렌딩’
-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넬슨 공공도서관(Nelson Public Library)이 성인의 새로운 인간관계 형성을 돕기 위해 짧은 대화를 반복하는 ‘스피드 프렌딩(Speed Friending)’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캐나다 지역매체 캐스타넷(Castanet)이 2026년 9월 14일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넬슨 공공도서관은 9월 18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은 성인을 위한 ‘스피드 프렌딩’을 연다. 연애 상대를 찾는 스피드 데이팅(Speed Dating)의 방식을 친구 만들기에 적용한 프로그램으로, 참가자들은 여러 사람과 짧은 대화를 이어가며 서로의 관심사를 발견한다. 별도의 준비나 기술은 필요하지 않으며,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는 부담을 줄이는 편안하고 포용적인 분위기가 핵심이다. 출처: Castanet
- 이번 행사는 책이나 독서를 직접적인 주제로 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최근 공공도서관 프로그램의 역할 변화를 보여준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넬슨 공공도서관 성인서비스 코디네이터 프레이저 서덜랜드(Fraser Sutherland)는 새로 넬슨으로 이주한 사람뿐 아니라 기존 인간관계를 넓히려는 주민도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프로그램의 목적은 정보를 전달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대화가 시작될 조건을 만들어 주는 데 있다. 이는 공공도서관이 ‘무엇을 읽는 공간’에서 ‘누구를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역할을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성인이 친구를 만들기 어려운 시대, 도서관이 개입한 이유
- 프로그램의 출발점은 단순하다. 온라인에서는 끊임없이 연결돼 있지만 실제 생활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는 오히려 부족해지고 있다는 문제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서덜랜드는 많은 사람이 소셜미디어와 화면을 벗어나 다른 사람과 직접 연결될 기회를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도서관은 짧은 대화를 순차적으로 이어가는 방식으로 처음 만난 사람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 심리적 부담을 낮췄다. 친구를 직접 만들어 주기보다 우연한 만남과 대화가 발생할 수 있도록 사회적 환경을 설계한 것이다. - 캐나다의 외로움 관련 통계를 보면 이러한 프로그램이 단순한 소규모 문화행사를 넘어 사회적 연결 문제에 대응하는 서비스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캐나다 통계청(Statistics Canada)의 캐나다 사회조사(Canadian Social Survey)에 따르면 2025년 2분기 캐나다 인구의 13.2%가 ‘항상 또는 자주 외롭다’고 답했다. 2024년 2분기에는 이 비율이 14.7%까지 올라갔다. 특히 2024년 조사에서는 15~24세의 17%, 25~54세의 14%가 항상 또는 자주 외로움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외로움이 고령층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청년과 성인에게도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이라는 의미다. 출처: Statistics Canada - 사람들이 관계를 원하면서도 실제 사회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간극도 확인된다.
캐나다 정부의 임팩트 캐나다(Impact Canada)가 2025년 2~3월 성인 2,265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동료가 부족하거나 고립되거나 배제됐다는 형태의 외로움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또한 43%는 사회활동 참여를 방해하는 장벽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시간 부족과 개인·가족 책임, 높은 비용 등이 주요 이유로 제시됐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별도의 소비를 요구하지 않는 공공도서관이 사회적 만남의 장소로 주목받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출처: Impact Canada
책 대신 대화·게임·춤을 연결하는 ‘디지털 디톡스’ 프로그램
- 스피드 프렌딩은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넬슨 공공도서관이 운영해 온 ‘디지털 디톡스 시리즈(Digital Detox Series)’의 연장선에 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은 화면에서 잠시 벗어나 의미 있는 대면 경험을 갖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도서관은 이전에도 신규 이주민들이 음식을 나눠 먹는 포틀럭(Newcomer Potluck), 보드게임의 밤, 소규모 수리 카페(Mini Repair Café), 라인댄스(Line Dancing) 등을 운영했다. 프로그램의 소재는 서로 다르지만 ‘같은 장소에서 무엇인가를 함께 한다’는 공통 구조를 가진다. - 특히 프로그램은 대화를 강요하기보다 공동 활동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관계를 형성하도록 설계돼 있다.
처음 만난 사람과 목적 없이 대화하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보드게임, 음식, 물건 수리, 춤처럼 함께 수행할 과제가 있으면 상호작용의 시작점이 생긴다. 스피드 프렌딩 역시 짧은 대화라는 명확한 형식을 제공해 낯선 사람과의 만남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을 낮춘다.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 콘텐츠 자체보다 관계가 형성될 수 있도록 참여 장벽을 낮추는 서비스 설계다. - 캐나다 전국 단위 조사에서도 공공도서관 프로그램은 이용률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이용자가 느끼는 영향은 매우 큰 서비스로 나타났다.
캐나다 도시도서관협의회(Canadian Urban Libraries Council, CULC)가 2026년 발표한 전국 사회적 영향 연구(National Social Impact Study)는 26개 도시 공공도서관 시스템의 1만8,000명 이상을 조사했다. 장서 이용 경험이 있는 이용자는 91%였던 반면 프로그램 이용자는 35%에 그쳤지만, 프로그램은 장서·공간·직원 등 주요 서비스 영역 가운데 가장 높은 영향 점수를 기록했다. 특히 프로그램이 공동체 형성, 관계, 공감 등 사회적 효과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점이 넬슨의 사례와 연결된다. 출처: Canadian Urban Libraries Council - 신규 이주민을 위한 만남 프로그램은 지역사회 정착 지원이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같은 조사에서 캐나다 신규 이주민(Newcomers)의 도서관 영향 점수는 평균 3.6점으로 전체 이용자 평균 3.3점보다 높았다. 전체 이용자 가운데 최근 1년간 프로그램을 이용한 비율은 35%였지만 신규 이주민과 원주민, 부모 집단에서는 각각 약 50%에 달했다. 넬슨 공공도서관이 신규 이주민 포틀럭에서 스피드 프렌딩으로 프로그램을 확장한 것도 도서관 프로그램이 새로운 지역사회 관계를 형성하는 입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출처: Librarianship.ca / Canadian Urban Libraries Council
공공도서관의 다음 역할은 ‘사회적 연결을 설계하는 공간’
- 넬슨 사례는 공공도서관을 단순한 문화시설보다 지역의 ‘제3의 장소(Third Place)’로 바라볼 필요성을 보여준다.
제3의 장소는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Ray Oldenburg)가 정립한 개념으로 집이라는 제1의 장소와 직장·학교라는 제2의 장소 이외에 사람들이 비공식적으로 만나 관계를 형성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도서관은 카페나 상업시설과 달리 소비를 전제로 하지 않고, 연령과 경제적 조건에 관계없이 접근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캐나다에서 지역 공공도서관을 이용하는 고령자 51명을 인터뷰한 연구에서도 도서관은 일상적 만남과 사회적 연결을 지원하는 중요한 제3의 장소로 평가됐다. 출처: Hamilton Council on Aging - 앞으로 공공도서관의 프로그램 평가는 참가자 수뿐 아니라 새로운 관계가 형성됐는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강연에 50명이 참여했는지를 측정하는 것과 그중 몇 명이 다른 사람과 대화를 시작하고 다시 도서관을 찾게 됐는지를 측정하는 것은 다른 평가 방식이다. 캐나다 도시도서관협의회의 1만8,000명 이상 조사도 기존의 대출량·방문 횟수 중심 평가에서 벗어나 정서적(Emotional), 지적(Intellectual), 창의적(Creative), 사회적(Social) 영향을 함께 측정했다. 공공도서관 성과평가 역시 프로그램의 양보다 소속감, 관계 형성, 사회참여 같은 결과를 포함하는 방향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출처: Canadian Urban Libraries Council - 한국 공공도서관에서도 ‘함께 할 활동’과 ‘우연한 대화’를 연결하는 소규모 프로그램을 확대할 수 있다.
거대한 복합문화 프로그램을 새로 만드는 것만이 방법은 아니다. 신규 주민 환영 테이블, 한 사람씩 자리를 이동하며 대화하는 프로그램, 보드게임, 공동 수선, 취미 교환, 함께 걷기와 같은 낮은 비용의 활동도 충분히 사회적 연결을 만들 수 있다. 공간 측면에서는 개인 열람석과 강의실뿐 아니라 4~8명 정도가 부담 없이 마주 앉을 수 있는 작은 테이블, 행사 이후에도 대화가 이어질 수 있는 라운지, 음식이나 간단한 활동이 가능한 유연한 공간이 중요해진다. - 결국 넬슨 공공도서관의 스피드 프렌딩이 보여주는 변화는 ‘도서관에서 무엇을 제공할 것인가’보다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조건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로 볼 수 있다.
책과 정보에 대한 접근은 여전히 공공도서관의 기본 기능이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에서 개인이 혼자 정보를 얻는 일이 쉬워질수록, 돈을 쓰지 않고도 낯선 사람과 같은 공간에 머물며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장소의 가치는 오히려 커질 수 있다. 넬슨의 작은 프로그램은 미래 공공도서관의 경쟁력이 더 많은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을 세심하게 설계하는 데도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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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casta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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