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가까이에 작은 도서관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 베트남 산간지역에서 다시 묻는 도서관 접근성
베트남 북서부 산간지역에서 책을 읽는 일은 단순히 독서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학생에게는 책을 만나기 위해 13km를 이동해야 하고, 어떤 농민에게는 실제 농사에 필요한 책 한 권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 2026년 9월 16일 베트남 온라인 매체 즈뉴스(ZNews)가 보도한 기사는 이러한 현실을 통해 농촌과 산간지역의 도서관이 무엇을 제공해야 하는지 다시 묻는다. 핵심은 책을 많이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지식에 가까운 곳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13km를 이동해야 만나는 책, 산간마을의 독서 현실
- 산간지역의 독서 문제는 책의 절대량보다 ‘접근 거리’에서 먼저 드러난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베트남 선라성(Sơn La) 무옹(Muông) 마을에 사는 고등학생 꾸옌(Quyên)은 학교까지 약 13km를 이동해야 한다. 학교도서관에도 자신이 원하는 책이 충분하지 않아 어머니에게 받은 작은 용돈을 모아 온라인으로 책을 주문하고 있으며, 그렇게 살 수 있는 책도 한 달에 얇은 책 최대 2권 정도다. 꾸옌이 “집 가까이에 작은 도서관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배경이다. ZNews 원문 - 농촌 주민에게 필요한 책의 내용은 도시 독자의 독서 수요와 상당히 다르다.
기사에 등장하는 40세 농민 디엡(Điệp)은 커피와 옥수수 재배를 생업으로 하고 있다. 그가 찾는 책은 비료 사용법, 작물 간격, 줄 간격, 농약을 살포해야 하는 시기처럼 바로 농사에 적용할 수 있는 자료다. 베트남출판협회(Vietnam Publishing Association) 도꽝중(Đỗ Quang Dũng) 부회장의 현장 조사에서도 지역별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호아빈성(Hòa Bình) 까오퐁(Cao Phong)에서는 오렌지 재배 관련 책, 랑선성(Lạng Sơn)에서는 원산지증명서(Certificate of Origin, C/O), 박닌성(Bắc Ninh)의 공예마을에서는 수공예 관련 서적, 산업지역에서는 노동법 관련 서적이 많이 읽혔다. 즉 농촌 도서관의 장서 구성은 도시에서 기증받은 책을 그대로 배치하는 방식만으로는 지역 수요를 충족시키기 어렵다. ZNews - 산간지역 청소년에게 문학과 심리 관련 책도 생계 정보만큼 중요한 지식 자원이다.
꾸옌은 문학뿐 아니라 감정과 인간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심리 관련 서적을 읽으며 설명하기 어려운 슬픔이나 두려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디엔비엔성(Điện Biên) 나히고등학교(THPT Nà Hỳ)의 문학교사 로티투후옌(Lò Thị Thu Huyền) 역시 농촌 학생에게 문학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학생들이 작품 속 인물을 통해 인내, 진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농촌지역 도서관을 단순한 농업·직업정보센터로 한정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ZNews

책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책이 부족하다
- 기증 중심 장서 개발은 지역 수요와 실제 장서 사이의 불일치를 만들 수 있다.
해당 기사에서는 농촌과 산간지역으로 책을 보내는 사업이 매년 진행되고 있지만, 전달되는 책이 실제 지역 주민의 요구와 일치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국제도서관협회연맹(IFLA)과 유네스코(UNESCO)가 제시한 IFLA-UNESCO 공공도서관 선언 2022(IFLA-UNESCO Public Library Manifesto 2022)도 공공도서관의 목표와 서비스가 지역사회의 요구를 기반으로 수립돼야 하며, 농촌과 도시의 서로 다른 요구에 맞추어 서비스를 조정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또한 장서와 서비스에는 지역사회의 언어적·문화적 다양성과 실제 요구가 반영돼야 한다. IFLA - ‘책을 보내는 정책’에서 ‘수요를 조사한 뒤 책을 공급하는 정책’으로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
지역마다 많이 읽히는 주제가 극단적으로 다르다는 베트남출판협회의 사례는 장서 개발 전에 이용자 조사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농업지역에서는 생산기술, 관광지역에서는 관광·창업, 공예마을에서는 수공예, 산업지역에서는 노동법 등 생활조건이 곧 정보 수요로 이어진다. IFLA-UNESCO 선언 역시 도서관 정책을 수립할 때 지역 지식(local knowledge)과 지역사회 참여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으며, 주민이 의사결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IFLA-UNESCO Public Library Manifesto 2022 - 공간 접근성과 장서 적합성은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꾸옌의 사례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약 13km이고, 학교에 도착해도 원하는 책을 찾기 어렵다. 따라서 도서관을 새로 설치하더라도 이용자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지 않거나 실제 수요에 맞는 장서를 갖추지 못하면 문제는 절반만 해결된다. IFLA-UNESCO는 공공도서관 서비스가 물리적으로나 디지털 방식으로 모든 주민에게 접근 가능해야 하며, 도서관 방문이 어려운 이용자를 위해 아웃리치(outreach) 서비스도 제공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IFLA
지역 문화와 생계에 맞춘 ‘작은 도서관’이 해법이 될 수 있다
- 기존 마을 문화시설을 활용하면 도서관을 별도의 건축물이 아닌 생활권 안의 학습 거점으로 만들 수 있다.
선라성은 마을 문화센터를 활용해 ‘지혜의 집(Ngôi nhà Trí tuệ)’과 ‘자비의 도서관(Thư viện Nhân ái)’ 등을 수백 곳 규모로 확산하고 있다. 기사에 따르면 주민들이 원래 문화·체육·공동체 활동을 위해 방문하던 공간에 책과 학습 기능을 더하면서 도서 이용 빈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새 건물을 독립적으로 짓기보다 주민이 이미 이용하고 있는 시설에 독서 기능을 결합한다는 점에서 농촌지역의 접근성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모델이다. ZNews - 지역 문화 프로그램과 독서를 연결하면 책이 생활문화의 연장선에 놓일 수 있다.
선라성에는 12개 민족이 함께 살고 있으며, 기사에서 인용된 서북대학교(Tây Bắc University) 호앙응옥아인(Hoàng Ngọc Anh) 부총장에 따르면 타이족(Thái)이 전체의 약 54%를 차지한다. 선라에서는 전통 춤과 음악, 축제 같은 공동체 문화활동을 문화센터에서 운영하면서 자연스럽게 관련 서적과 자료를 접하도록 하고 있다. 독서를 별도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분리하기보다 기존 지역문화 활동과 연결하는 방식이다. ZNews - 선라의 접근법은 지역 단위 평생학습정책과도 연결되고 있다.
선라시는 2024년 유네스코 글로벌 학습도시 네트워크(UNESCO Global Network of Learning Cities)에 가입했다. 2024년 당시 유네스코는 35개국 64개 도시를 새 회원으로 선정했으며, 베트남에서는 선라와 호찌민시(Ho Chi Minh City)가 포함됐다. 같은 해 아시아 지역 학습도시 네트워크는 총 356개 도시, 79개국 규모로 확대됐다. 이는 지역 문화시설, 평생학습, 도서관을 하나의 지역학습 생태계로 연결하는 접근이 국제적인 평생학습 정책과도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UNESCO

한국의 작은도서관 정책에도 필요한 것은 ‘가까움’과 ‘맞춤성’이다
- 한국 역시 생활권 안에 분산된 작은도서관이라는 기반을 이미 갖추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26년 6월 발표한 2025년 전국 작은도서관 운영 실태조사의 조사대상은 전국 17개 시·도 6,729개 작은도서관이었다. 전국적인 작은도서관 네트워크가 이미 존재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과제는 시설 수 자체를 늘리는 것뿐 아니라 각 지역의 주민 구성, 학교와의 거리, 연령대, 산업구조에 따라 장서와 서비스를 정교하게 차별화하는 데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작은도서관 - 한국 농산어촌의 작은도서관도 ‘주민이 어떤 책을 원하는가’를 운영의 출발점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베트남 사례에서 농민에게 필요한 것은 농업기술서이고,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문학과 심리·진로 관련 책이었다. 이는 같은 농촌지역 안에서도 세대와 직업에 따라 정보 수요가 달라진다는 의미다. 국내 작은도서관 운영실태조사 역시 장서 수뿐 아니라 연간 증가·폐기 장서, 운영일수, 운영시간, 운영자 등의 항목을 매년 조사하고 있다. 앞으로는 이 같은 정량적 운영지표에 지역별 이용자 요구조사를 함께 연결해야 장서의 ‘양’에서 ‘적합성’으로 평가를 확장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2026년 작은도서관 운영 실태조사 자료 - 농촌 도서관은 작은 규모일수록 학교·문화센터·지역 주민을 연결하는 복합 거점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도서관디자인연구소가 소개한 중국 시안의 진펑(Qinfeng) 학교도서관은 농촌 학교와 마을 사이에 위치해 학교 이용자뿐 아니라 인근 주민에게도 개방되는 구조로 설계됐다. 독서뿐 아니라 세미나, 전시, 교류, 학습, 공연 등을 수용하는 다목적 공간으로 구성한 사례다. 베트남에서 제기된 “집 가까이에 작은 도서관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요구를 공간적으로 해석하면, 거대한 중앙도서관보다 생활동선에 배치된 소규모 복합형 도서관 네트워크가 더 적합할 수 있다. [중국] 시안시의 진펑(Qinfeng) 학교 도서관
도서관은 지역사회의 ‘사회적 센서’가 될 수 있다
- 어떤 책이 많이 읽히는지를 보면 그 지역 주민이 무엇을 고민하는지 알 수 있다.
해당 기사는 책을 일종의 ‘사회적 센서(social sensor)’로 표현한다. 오렌지 농가에서는 오렌지 재배법, 공예마을에서는 수공예, 산업지역에서는 노동법이 많이 읽히는 현상은 대출 데이터 자체가 지역사회의 산업구조와 생활문제를 드러내는 자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농촌 도서관의 대출 기록과 희망도서 신청 데이터를 지역정책과 연계하면 농업교육, 직업교육, 청소년 지원 등에 활용할 수 있다. 이 해석은 지역 요구를 중심으로 도서관 서비스를 설계해야 한다는 IFLA-UNESCO 원칙과도 일치한다. IFLA - 농촌 도서관의 핵심 성과는 장서량보다 ‘지식에 접근하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거리와 비용’을 줄이는 데 있다.
꾸옌에게 가장 큰 문제는 책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책에 도달하기 위해 약 13km를 이동해야 한다는 점이다. 유네스코 역시 베트남이 교육 분야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지만 농촌과 산악지역에는 여전히 책 부족과 미발달한 도서관 시스템이 존재하며, 일부 어린이는 교과서 외 문학작품을 접하기 어렵다고 지적해왔다. 유네스코가 소개한 ‘베트남 농촌을 위한 책(Books for Rural Areas of Vietnam)’ 프로그램도 이러한 격차를 줄이기 위해 시작돼 여러 지역에 수천 개 규모의 독서공간 확산으로 이어졌다. UNESCO - 결국 좋은 농촌 도서관은 ‘많은 책이 있는 곳’보다 ‘필요한 책이 가까이에 있는 곳’에 가깝다.
베트남 사례가 보여주는 문제는 시설, 장서, 프로그램 가운데 어느 하나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가까운 거리의 작은 공간, 지역 주민의 생업과 관심사를 반영한 장서, 청소년의 정서와 진로까지 포함하는 다양한 자료, 문화센터·학교와 연계된 운영, 그리고 이용자의 요구를 지속적으로 조사하는 시스템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이런 조건이 갖춰질 때 작은 도서관은 책을 보관하는 공간을 넘어 마을 안에서 지식과 사람을 연결하는 기반시설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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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vietnam.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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