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도서관에서는 침묵을 요구해 왔습니다. 코를 골고, 책을 도난당하고, 무엇을 사야 할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도서관은 여전히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곳입니다.
서가를 열어보세요! 책을 직접 만져볼 수 있을까요? 1912년 2월, 포르보 시립도서관이 새로운 모습으로 문을 열었을 때 대출자들은 궁금해했을 것입니다. 더 이상 모호한 카탈로그에서 책을 찾거나 카운터 뒤의 사서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적어도 1700년대부터 도서관이 존재했지만 핀란드에서는 이런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공공 도서관의 시초는 1794년 바사 항소법원의 구성원들이 설립한 독서 도서관으로 간주됩니다.
이 도서관은 사립 도서관으로 회원들이 “자신의 오락과 취미를 위해” 설립했지만 장서가 방대했고 다른 주민들에게 적은 비용으로 책을 빌려주기도 했습니다.19세기 중반부터 노동 계급을 위한 공공 도서관이 설립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주로 민간 자금으로 운영되었습니다. 공공 도서관은 핀란드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교육하고 핀란드어 문학의 지위를 향상시키고자 했던 페노만 운동과도 맞물려 있었습니다.
도서관은 일반적으로 방 한 칸이나 다른 용도로 사용되던 공간의 한 구석에 있었습니다. 가장 작은 도서관은 방 하나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투르쿠에는 처음에 교육을 받지 못한 계층을 위한 시립 도서관이 있었습니다. 헬싱키에서는 계층이나 연령에 관계없이 수도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에게 도서관이 개방되었습니다. 대출은 무료였으며 한 번에 한 권씩 빌릴 수 있었습니다.
투르쿠에는 1150권, 헬싱키에는 500권의 책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이상의 책을 빌려주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헬싱키에서는 첫해에 1700권의 책이 대출되었습니다. 이에 비해 작년 헬싱키 시립도서관은 1억 5천만 권 이상의 도서와 2천만 개 이상의 오디오 및 기타 자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8억 7천만 건 이상의 물품이 대출되었습니다.
책을 도난당하고 가상의 주소로 ‘빌린’ 경우
19세기에는 책이 도난당할까 봐 개방형 서가는 고려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책이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1883년 헬싱키 도서관이 리카르딘카투에 개관한 지 1년이 되던 해, 목록 조사 결과 3,000권의 장서 중 780권의 책이 사라진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추적을 시작했을 때 많은 주소가 가짜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 결과 대출에 보증이 필요했습니다. 과실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의 이름도 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신문 열람실은 1860년대에 보편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고 사람들이 악덕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좋은 방법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반면 1912년 <라이브러리 저널>에서 실업자라고 불렸던 ‘게으름뱅이’는 며칠 동안 신문에서 원치 않는 존재였습니다.
리카르딘카투에서는 졸고, 술을 마시고, 심지어 카드놀이를 한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해 헬싱키에 문을 연 칼리오 도서관에서는 신문을 높은 곳에 비치하고 서서 읽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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