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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문화 활동 중심지, 도서관 복합문화공간

2024년 05월 11일 | 도서관일반 | 코멘트 0개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의 격월간 소식지 “도서관이야기” 2024년5/6월호]

청소년의 문화 활동 중심지, 도서관 복합문화공간

글_최만호(건국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겸임교수)

| 공공도서관 및 학교도서관 확대의 중요성 |
국제교육성취도평가협회(IEA)는 2001년부터 5년 주기로 전 세계 주요 국가의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PIRLS(Progress in International Reading Literacy Study)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이 평가는 문학적 경험과 정보 습득 및 활용이라는 두 가지 주요 읽기 목적에 초점을 맞춰 학생들의 읽기 성취도를 평가하고 국가별 비교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 가장 최근의 PIRLS는 57개국이 참여한 결과를 정리해 지난해 5월 발표한 PIRLS 2021이다.
이 발표 이후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자국 아동의 저조한 문해력 수준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에 유럽 27개국의 교육부 장관들은 긴급회의를 소집해 아동의 문해력 향상 방안을 논의했다. 그 결과 공공도서관 및 학교도서관의 확대가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PIRLS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나라와 결과를 비교하기 어렵다. 하지만 여러 사회적 환경을 고려해 보면 우리나라도 대부분의 국가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2019년의 ‘청소년 독자·비독자 조사연구’에 따르면 청소년 독서 흥미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에 최고점이고, 초등 3~4학년부터 감소해 고등학교까지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즉 청소년 독자가 책에서 멀어지는 시기는 초등 3~4학년 때이며, 그 연령이 해마다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결국 어린이와 청소년의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 이용을 권장하는 것이 전 국민의 독서량과 문해력을 개선하는 가장 좋은 해결책일 것이다. 그렇다면 동영상과 게임에 매달려 시간을 보내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발길을 어떻게 도서관으로 돌릴 수 있을까?

| 증가하고 있는 어린이·청소년 전용공간 |
최근 신축되거나 리모델링되고 있는 국내외 도서관의 경우 어린이·청소년의 도서관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전용 복합문화공간을 구축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2023년 6월 새로 리모델링한 전북 순창도서관은 4층 건물에서 3층 대부분을 청소년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확장해 새로 꾸몄다.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지방 소도시 청소년들의 동아리 모임 공간, 게임을 하며 놀 수 있는 코너, 여러 공예품을 만드는 메이커 스페이스,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만화 공간으로 구성해 지역 청소년에게 새로운 아지트를 제공한 것이다.
2023년 10월 개관한 대구 2·28기념 학생도서관에도 3층에 초등 5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을 위한 전용공간을 조성했다. 글을 쓰거나 나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만드는 제작 공간, 다양한 재료로 창작물을 만들 수 있는 창작 공간, 음악을 감상하고 작곡과 연주까지 할 수 있는 음악 공간, 춤을 추거나 콘솔 게임을 할 수 있는 놀이 공간, 영화를 감상하는 영화 공간, 편안한 자세로 머무르며 원하는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휴게 공간 등 총 6개 공간을 선보였다.
국외 사례를 살펴보면 벨기에 조도뉴(Jodoigne)도서관의 경우 2023년 4월 리모델링 후 최상층을 장난감 도서관으로 조성해 1,200개의 게임과 1,100종의 만화를 제공했다. 휴식을 위해 게임 테이블과 안락의자도 배치하고 있다. 노르웨이의 크리스티안산(Kristiansand) 공공도서관은 2023년 2월 청소년 공간을 새로 마련했으며, 더 나아가 지역 도서관들의 미래 계획에 있어 청소년을 위한 공간 개선을 최우선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영국의 미들랜드(Midland)도서관에서도 의견 조사를 통해 도서관을 자주 방문하지 못하는 청소년을 위한 새로운 전용공간을 마련했다. 공간에 필요한 카펫, 장식품 및 실내 디자인에도 청소년들이 참여해 그들만의 시선으로 공간을 조성했다. 미국의 샴페인 공공도서관은 ‘더 스튜디오’라는 10대 청소년을 위한 새로운 공간에서 다양한 창작 활동을 통해 도서관에 대한 참여와 흥미를 이끌고 있다.

| 다양한 문화 활동과 체험 기회 제공 |
어린이·청소년은 도서관의 복합문화공간에서 다양한 문화 활동과 체험을 하고 있다. 미국 클리블랜드 공공도서관은 최첨단 기술 공간인 ‘스튜디오525’를 통해 로봇공학, 게임, 인공지능, 예술, 가상현실, 공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함께 어울리고 탐구하고 창조하고 혁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독일의 루드비히스하펜시립도서관과 프랑스의 망통시립도서관은 만화 전용공간을 마련하고 만화 전문가 초빙 강연, 만화 그리기 대회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만화의 문화적·교육적·오락적 가치를 제공하며 청소년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런 일반 문화 활동뿐 아니라 어린이와 청소년이 가장 흥미를 느끼는 활동인 게임 관련 프로그램으로 어린 독자들을 이끄는 도서관도 증가하고 있다. 미국 샤프스버그 공공도서관은 올 2월 청소년 전용공간을 마련하고 이곳에서 음악, 미술, 그래픽디자인과 함께 비디오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또 미국 비스마크참전용사기념도서관을 비롯해 네덜란드의 할렌도서관 등 많은 도서관이 평소 또래 아이들과 교류할 기회가 없는 청소년들이 안전하고 자유로운 공간에서 공통의 취미를 통해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게임 대회를 주최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비디오 게임이 책이나 비디오처럼 청소년들이 소비하는 미디어의 또 다른 형태이며, 게임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도 존재하는 만큼 그들의 공통 관심사를 도서관에서 지원·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 6C 활동에 적합한 공간 구성 |
복합문화공간에서의 활동은 미국 발달심리학자 로베르타 골린코프의 소프트 스킬(Soft Skill·무형의 역량) 경험에 대한 기회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소프트 스킬은 ‘6C 역량’을 기본으로 한다. 이는 협업(Collaboration), 의사소통(Communication), 콘텐츠(Contents),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창의적 혁신(Creative Innovation), 자신감(Confidence)으로, 도서관의 복합문화공간 구성도 이러한 활동에 적합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 이용자 중심, 어린이·청소년의 관점으로
대구 2·28기념 학생도서관은 개관 1년 전부터 어린이·청소년의 요구 사항을 심도 있게 파악하기 위해 초등 5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 학생 약360명의 설문조사와 심층 인터뷰를 진행해 이를 토대로 구체적인 기획에 착수했다. 각 공간은 학생들이 책 이외의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하고(Contents), 또래와 소통하고(Communication), 함께 탐험하고(Collaboration),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서(Critical Thinking) 이를 창작물로 만들어 내는 과정(Creative Innovation)을 통해 스스로를 돌보고 성장(Confidence)시키는 데 초점을 뒀다. 이러한 노력으로 지난해 10월
오픈 이후 올해 1월까지 4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2,278명의 방문자 수를 기록했다.

– 유연한 공간과 운영
어른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권과 결정권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도록 공간 및 운영 계획을 수립한다. 공간은 다양한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칸막이나 구조물을 최소화하고 이동 가능한 가구를 통해 유연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 운영시간도 어린이·청소년이 실제 이용할 수 있는 시간대, 예를 들어 평일은 오후 3시~오후 9시, 주말과 공휴일은 오전 10시~오후 9시 등으로 설정하고, 운영 인력의 근무시간도 청소년 이용 시간대를 우선 고려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 혼자 때로는 같이
모든 어린이·청소년이 복합문화공간의 북적거림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고, 언제나 원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혼자 조용히 책에 집중하거나 생각에 잠기는 것도 필요하며, 함께 토론하고 작업할 기회도 있어야 한다. 활동 프로그램뿐 아니라 공간도 이러한 수요에 맞춰 정적 공간과 동적 공간의 적절한 구분과 분리가 필요하다.

– 독서 습관으로 이어지는 프로그램과 공간
최근에 만난 정책 결정권자들로부터 많이 듣는 말 중의 하나가 ‘미래 도서관은 더 이상 책만 읽는 장소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예전에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매우 멋지고 신선한 표현이라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 되어 특별한 감흥이 없다. 게다가 책을 위한 공간과 예산을 축소하기 위한 언어적 수사로 이용되기도 해 마음이 불편할 때도 있다. 세계 최고의 도서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핀란드 헬싱키의 오오디(Oodi)도서관은 미래 도서관의 콘텐츠로 여전히 ‘책이 핵심’이라고 했다. 도서관 복합문화공간의 모든 활동도 결국 책이 핵심인 독서 습관으로 이어져야 한다.
전문가들은 어린이들이 책을 보다 친근하게 느끼게 하려면 읽어야 하는 책보다는 읽고 싶은 책을 자연스럽게 찾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읽고 싶은 책의 표지와 제목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책장을 넘기며 오감으로 느끼게 만들고, 마음을 움직이는 책을 찾아서 읽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복합문화공간에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할 때 반드시 관련 도서를 큐레이션해 동선에 배치하고 자연스럽게 독서로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 좋다. 관심과 호기심을 가진 주제에 대해 타인이 아닌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고 고른 책은 재미를 더한다. 아울러 스스로 흥미를 갖고 선택한 독서 활동은 도서관을 더 자주 이용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문해력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 부모와 청소년이 안심할 수 있는 문화공간 |
앞서 언급한 PIRLS 결과 분석에 따르면 읽기 성취도와 학교 소속감은 긍정적인 상관관계를 보였다. 괴롭힘 사건의 빈도와 평균 읽기 성취도 사이에도 강한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독서 습관이 좋은 어린이·청소년이 학교생활은 물론 친구와의 관계도 좋아진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학교에는 입시 위주의 정규 교육 과정에서 소홀히 취급받는 문화·예술·창작에 대한 청소년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다양한 문화공간이 필요하다. 다른 학교 또래 친구들과의 만남을 통해 소프트 스킬도 향상해야 한다. 따라서 모두에게 안전한 문화공간인 학교 밖 도서관에서 각 분야 전문가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해야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학교에서 제공하지 못하는 문화·예술·창작 프로그램을 도서관에서 수료하게 되면 학교 수업으로 인정해 주고, 이를 통해 재능 개발뿐 아니라 사회생활과 학교 수업에도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제도적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원문보기 : www.nlc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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