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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서관을 자주 찾는 노인들에게서 발견되는 ‘은퇴 후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의 특징

2024년 01월 8일 | 서비스

급증하고 있는 정년 퇴직 인구에 대한 도서관의 서비스를 고민해 봐야겠네요.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고령자들이 도서관을 회피의 장소가 아니라 도전의 장소로 방문할 수 있도록 어떤 서비스가 필요할까요?


정년 퇴직했지만, 직장 외에는 인간관계도 없고, 집에도 갈 곳이 없다… 노년에 고독해지는 사람은 무엇이 문제일까?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 씨가 행복한 노후를 보내기 위해 필요한 삶의 방식을 이야기한다.

※본고는, 키시미 이치로의 『늙은 용기』(PHP 문고)에서 내용을 일부 발췌・편집한 것입니다.


정년 후의 고민은 대인 관계의 고민

일본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장수 국가입니다. 평균 수명은 남녀 모두 80세를 넘습니다. 중국 당대의 시인·두보는 70세까지 사는 것은 ‘예로부터 드문 일’이라고 말했지만, 일본에서는 이제 약 5명 중 1명이 70세 이상입니다(2019년 9월 기준).

많은 사람들이 장수를 기원하고, 실제로 노년의 삶은 길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를 누리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년퇴직을 하고 직장을 떠나면 오히려 더 늙고 건강이 나빠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삶의 리듬이 크게 바뀌는 것도 그 원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만, 은퇴 후의 삶을 즐기지 못하는 것은 대인관계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정년퇴직을 하게 되면 직장을 통해 맺었던 많은 관계를 잃게 됩니다. 이를 대체할 새로운 대인관계를 잘 형성하지 못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됩니다.

아들러는 모든 고민은 대인관계의 고민이라고 했습니다. 은퇴 후의 고민도 대인관계의 고민인 것입니다.

동네 도서관에 가면 요즘은 아이들보다 은퇴한 남성들의 모습이 더 눈에 띕니다. 누구와 인사를 나누거나 무슨 조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신문을 읽거나 신간을 훑어보거나 창가 의자에 앉아 졸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도서관에 가서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 자체는 물론 건강한 일입니다. 도서관까지 가는 길만 걸어도 집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것보다 건강에 좋습니다.

하지만 지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만 도서관을 찾는 것은 아닙니다. 은퇴 후 새로운 관계를 맺지 못하고 집에도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누구에게도 말 걸지 않아도 되는 도서관에서 구원을 찾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도 사실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아들러는 『삶의 의미 심리학』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타자가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타자와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다.”

인간은 ‘사람(人)사이(間)’라는 말처럼 사람 사이에 있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산속에 조용히 사는 사람이라도 산기슭에 사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을 완전히 잊혀져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산기슭에 있는 사람 역시 그 선비 같은 사람이 궁금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타인과 연결되지 않은 사람, 혼자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책에서 애들러는 “만약 사람이 혼자 살고 혼자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그는 멸망할 것이다”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혼자서는 생물학적으로 약할 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없이는 ‘인간’으로서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타인과의 마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들러는 “자신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때만 용기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용기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도전하는 용기입니다. 왜 용기가 필요한가 하면, 도전하면 그 결과가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결과가 나올까봐, 거기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도전하는 것을 주저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공부를 하지 않는 아이에게 “너는 원래 머리가 좋은 아이니까 열심히 하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하는 부모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아이들은 진지하게 공부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해도 성적이 나오지 않는 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면 할 수 있다’는 가능성 속에 사는 것이 더 좋기 때문입니다.

은퇴 후의 새로운 도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하면 할 수 있다. 다만 지금은 하지 않을 뿐”이라는 말은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현실에서 도망치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런 건 해봤자 소용없다’, ‘노력할 가치가 없다’고 단정 짓는 것도 과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입니다.

어떤 일이든 노력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할 수 없는 가능성도 있지만, 그 경우에도 ‘할 수 없다’는 현실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까지나 ‘하면 된다’, ‘언젠가는 할 수 있다’는 가능성 속에 살면 길을 개척할 수 없습니다.

애들러가 지적하는 또 하나의 용기는 대인관계에 들어가는 용기입니다.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 마찰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움을 받기도 하고, 증오를 받기도 하고, 배신당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 두려워해 ‘미움 받고 상처받을 바에야 차라리 남들과 어울리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이웃 관계는 귀찮을 뿐이야. 아무 소용없어”라고 외치는 것도 대인관계에 뛰어들 용기가 없다는 증거입니다.

아들러는 ‘모든 고민은 대인관계의 고민’이라고 말했지만, 삶의 기쁨과 행복은 대인관계 속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젊은 시절, 오래 사귀었던 그 혹은 그녀와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사람이라면 분명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결심이 나중에 큰 실수였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말입니다.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타인과의 관계를 떠나서는 행복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행복한 노후를 보내고 싶다면 대인관계에 용기를 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의리 때문에 꺼려지는 대인관계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제부터는 가족이나 세간의 시선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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